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스터 섬 일부 "머리"에 시신이 묻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동시에 키가 수 미터에 달하는 "거인 머리"는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이 머리들에 시신이 묻혀 있었다면, 그 비율을 맞추려면 최소 20미터 높이의 진짜 거인이어야 했다.
최근 발굴 결과 이스터 섬의 "거인 머리"는 사실 땅속에서 머리가 솟아오른 "거인 머리"로 밝혀다.
수 톤에 달하는 석상들이 어떻게 거의 20미터 깊이까지 묻혔을까?
만약 의도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부수지 않고 묻을 수 있었을까?
이스터 섬은 작은 섬에 불과하다.
도대체 드넓은 남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수십 개 "거인 머리"를 묻을 인력은 어디서 구했을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있다.
이집트인들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제국 수준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작은 이스터 섬 섬 주민들은 어떤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을까?
난마돌Nan Madol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신비로운 민족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 대도시를 건설했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제국 수준의 노동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완전히 고립된 섬에는 어떤 노동력이 있었을까?
터키와 시리아 국경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거석 유적 전체가 완전히 묻혔는데, 누가, 왜 묻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유적은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라고 일컫는데 이는 "배꼽 언덕belly hill"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언덕 아래에는 인류가 가장 깊이 간직한 미스터리 중 하나가 숨어있다.
최근 지하 투시 레이더를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괴베클리 테페와 유사한 유적이 수 미터 깊이에 "매몰"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문명이 나중에 사라진 것일까?
***
여러 번 소개한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 Moai Statues 이야기다.
저 석상을 두고서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들이 그럴 듯하게 떠돌았다.
그 이야기를 예서 반복하지는 않겠거니와,
그런 어림반푼어치 없음은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저 발굴을 전하는 도판은 많지만 저리 근접 지점에서 찍은 것은 처음 본다.
더 생생하다.
설마 ai 합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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