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명한 형질인류학자로 기요노 겐지라는 인물이 있다. 청야겸차 清野謙次 라 쓴다.
1885년에 태어나 1955년에 사망했다. 교토제국대학 출신으로 독일 유학 뒤에 귀국해서 모교인 교토제국대학 교수가 되어 활동하면서 일본인은 아이누 후손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일본인 독자 형성론 혹은 혼혈론으로 주창해 열렬한 칭송을 받았다.
수집벽이 정신병적이라, 사찰 보물을 훔쳐내다가 잡혀서 유죄판결을 받아 면직되는가 하면, 이 사태로 당시 교토제국대 총장이면서 한국고고학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신화적 인물로 추앙하는 하마다 코사쿠 빈전경작 濱田耕作 이 사임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친구가 길러낸 제자 중에 731부대장이 있어, 이런 인연을 발판으로 생체실험에 깊이 간여한다.
전후 처리에 미국과 일본의 밀약으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이 친구가 1925년 식민지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을 여행한다.
이때 세키노 다다시 관야정 關野貞 주선으로 을축년 대홍수가 지나간 풍납리토성을 방문하는데 그가 남긴 이때 여행기가 민족이라는 잡지에 짧게 실렸다.
이 짧은 글이 풍납토성 역사에서 굉대한 중요성을 갖는다.
지금 국박 백제실에 전시중인 풍납토성 출토 청동초두 2점은 바로 대옹 안에서 발견된 것인데, 그것을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시대 다른 글, 예컨대 아유가이 후사노신 점패방지진 鮎貝房之進 같은 글에서도 내가 이를 본 적이 있기는 하다.
그나저나 200매 원고쓰다가 또 딴길로 빠져 기요노 겐지를 여행하다.
임경택 형이 이 기요노 겐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므로 기회 닿으면 형을 통한 기요노 강의를 한 번 들어봤으면 한다. (201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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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풍납토성 탐방기(1926)는 아래 참조
아울러 그의 상세한 행적 정리는 아래 참조
清野謙次
Kenji KIYONO, August 14, 1885 - December 27,1955
https://navymule9.sakura.ne.jp/kenji_kiyono1885-19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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