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이 죽고 그의 아들 덕종德宗이 재위하던 시절 이야기다. 왕가도는 덕종의 장인이기도 하다.
덕종이 칭제하기 시작한 그 원년 1031년 6월 3일, 내내 고려와는 문제를 일으킨 거란 6대 황제 성종聖宗이 사망하고 그 아들 야율종진耶律宗眞이 즉위하니 이가 7대 황제 흥종興宗이다.
종주국으로 섬기는 왕조 황제가 사망했으니 공식 사절 조문단을 파견해야 했다. 그 소임을 공부낭중工部郞中 유교柳喬와 낭중郞中 김행공金行恭이 뽑혀 가게 됐다.
한데 거란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 이를 틈타 부마駙馬 필제匹梯가 동경東京을 근거지로 삼아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 사태를 어찌 할 것인가?
이때 왕가도는 대 거란 강경파 선두주자에 서서 “거란은 우리와 우호를 맺고 예물도 교환하지만 매번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중략) 마땅히 이 틈을 타서 압록강의 성과 다리를 허물고 억류한 우리 사신[行人]들을 돌려달라고 요청하십시오. 만약 〈거란이〉 듣지 않으면 마땅히 그들과 외교관계를 끊어야 합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에서도 다룬 적이 있듯이 당시 고려 거란 국경은 압록강이기는 하지만, 그 동쪽에 거란 진지 일부가 있었다. 이 반란한 틈을 타서 거란을 완전히 압록강 서쪽 건너편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 왕가도 생각이었다.
이 사안을 두고 어찌할 것인지를 고려 조정은 각각 두 건을 찬반투표에 부친다.
첫째 외교 관계를 단절해야 하느냐 하는 데 대한 결과는 찬성 29명, 반대 39명이라 반대가 많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것도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이런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류! 이게 정답이고 실제로 고려 또한 그러했다.
이 사안에서 서희 아들로 그 역시 외교통인 서눌徐訥은 의외로 거란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쪽에 선 반면, 반대편에는 황보유의皇補兪義가 섰다.
다만 그렇다고 외교 관계를 끊자는 강경 반대파를 마냥 억누를 수는 없어 고려 조정은 희한한 타협점을 찾는데 하정사賀正使 파견을 중지했지만 거란 성종聖宗의 태평太平이란 연호는 그대로 사용했다.
그런 대로 거란 체면 치레를 해준 것이지만, 이미 이때가 되면 고려도 자신감이 붙어서 거란을 향해 고개 빳빳이 드는 시대가 되었다.
국교 관계는 그렇다 치고, 두번째 압록강 동쪽 거란이 점유한 성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 역시 공격해 파괴하자는 왕가도 주장과 그럴 수는 없다고 반대하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재상들에게 부친 찬반토론 결과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와 왕가도, 그리고 이단李端은 매파로 공격하자 주장했지만 서눌과 황보유의·황주량黃周亮·최제안崔齊顔·최충崔冲·김충찬金忠贊은 반대했다.
서눌과 황보유의 생각이 참 묘한데, 국교 단절에서는 반대파에 선 두 사람이 신기하게도 선제 거란 공격에는 같은 반대 목소리를 냈으니 말이다.
이럴 때 왕은 어찌할 것인가? 침 손바닥에 뱉어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담당 부서에 명해서 태조 왕건 신주단지를 모신 태묘太廟에 가서 점을 쳐서 물었더니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출병은 없던 일로 했다.
이 두 사안에서 앞서 봤듯이 왕가도는 줄기찬 강경 매파였다.
이 토론이 있었을 당시 이미 왕가도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얼마 뒤 야마 돌아서 사직하고는 고향 청주로 돌아가 그곳에서 요양하다가 덕종 3년(1034)에 죽었다.
왕의 장인이요 국가의 중신이며 재상을 지낸 사람이니 당연히 장례 비용은 국가에서 부담했다.
시호를 영숙英肅이라 하고 훗날 태사 중서령太師中書令에 추증되고 아울러 현종을 모신 사당에 현종을 보좌한 주요 공신으로 배향되는 영광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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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도, 거란 선제공격을 주장한 매파(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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