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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대하여, 바람의 검 신선조의 경우

by 초야잠필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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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일본 소설가 아사다 지로[浅田次郎. 1951~]의 책 《칼에 지다》를 먼저 본 게 아니고 이 책을 원전으로 만든 영화를 먼저 봤다. 

국내에서는 "바람의 검 신선조"라던가 하는 이름으로 개봉했는데, 원래 제목은 "미부 의사전[임생 의사전壬生義士伝]"이다. 

미부는 신선조가 주둔하던 교토 동네 이름이다. 

주인공이 신선조新選組[신센구미]의 대원이었으므로 붙인 책 제목일 게다. 

책 제목만 보면 흔한 신센구미 찬양 영화인 듯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신선조가 주인공은 아니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모두 신선조는 그냥 흘러가는 배경일 뿐이고, 

주제는 막말 지지리도 못살던 최하층 사무라이 이야기다. 

이 사무라이는 동북의 한 번에서 태어나 가난을 등에 짊머지고 살았느데, 

언젠가 쓴 것 같지만 일본사에서 막말, 19세기 초반이 되면 사무라이 계급의 하층 무사들은 

번으로 부터 받는 녹봉이 물가인상을 따라가지 못해서 말이 사무라이지 갖은 잡일을 부업으로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도 못하는 지경에 빠져 있었다. 

사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이들 최하급 무사들이 중심이 되었는데, 유신후 일본 정치를 주름잡은 사람 중에는 하급 무사가 즐비하다. 

오히려 에도시대 막부의 고급무사였던 사람들과 번주 계급, 공경계급은 유신 이후 화족이라는 이름으로 대우 받았지만

이들은 일본 정부의 장식품 같은 것이 었을 뿐, 실제 권력은 바로 이들 하급 무사들이 쥐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탈번하여 쿄토로 가 신센구미에 합류하는데

사실 이 사람이 탈번하여 쿄토로 가 활동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 굶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당시의 유행이었던 근왕양이, 다시 말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탈번하여 쿄토로 간다는 것을 앞세웠다. 

당시 좀 먹고 살만한 집 사람 중에는 근왕양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선동되어 탈번한 사람도 많았는데, 

이에 못지 않게 많았던 사람이 바로 이 사무라이처럼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 탈번한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 사무라이의 칼싸움이 난무하는 찬바라 영화 같은데, 

책을 보면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책만 보면 또 이해가 잘 안갈 것 같기도 하다. 

전체적인 소설 줄거리는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잘 캐치해냈다는 생각이다. 

필자 생각에는 영화를 먼저, 소설을 다음에 보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제? 

한마디로 사무라이 정신, 근왕양이, 등등은 다 개소리고 

이 사무라이가 가족을 굶주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탈번하고 칼싸움으로 번 돈을 고향에 송금하여 

그것으로 가족을 먹여살렸던 것이야 말로 가장 숭고한 일이었다, 그 소리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꿈을 접고 소시민의 길을 택했을까. 

나는 자신의 꿈을 쫒는 것 못지 않게

가장으로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선택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실상은 막말 쿄토에서 신센구미에서 정치적 격변을 겪고 

마지막에는 보신전쟁 중 막부군편에서 싸우다 할복하여 끝나지만, 누가 봐도 막부편에서 의리를 지킨 사무라이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의 행동의 바닥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하는 의무감이 가장 컸더라..그 소리다. 

이 소설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사무라이, 근왕양이 등등이 모두 개소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가장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하는 희생을 동반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모성애 못지 않게 위대한 것이 역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인 셈이다. 

우리는 자신의 꿈을 평생 쫒는 사람들이 역사를 결국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가장의 책임감이 역사의 더 큰 부분을 만든게 아닐까. 

워낙 재미있게 쓴 소설이라 한 권 다 보는데 시간도 얼마 안걸린다. 강추. 


P.S.) 다만 일본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단순한 칼싸움 영화에 맥락없는 소설처럼 보이기 쉽다. 

일본사를 미리 볼 필요까지는 없는데, 

반드시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찾아읽으시기 바란다.

소설을 먼저 읽으면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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