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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오래된 것일수록, 당대의 증언일수록 더 믿어서는 안 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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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계, 특히나 고물딱지를 신주보물단지처럼 여기는 우리네 역사 관련 학계에서 고질과도 같은 믿음이 있으니, 오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그것이다.

텍스트로 국한해 볼짝시면, 덮어놓고 오래된 것일수록 그에 대한 상대적인 믿음이 더 강한 노골과도 같은 신념이 있다.

오래된 것일수록, 그것이 소위 당대當代의 증언이라 해서, 그것이 후대에 나온 판본들에 견주어 당시의 실상을 훨씬 더 잘 전한다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위 당대 혹은 당대에 가까운 텍스트일수록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언제나 그 보기로 들 듯이, 나는 광개토왕비 기록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다.

 

죽간손자竹簡孫子. 1972년 산동성山東省 임근시臨沂市 은작산銀雀山 한묘漢墓 출토. 산동박물관山東博物館 소장. 가차로 넘쳐난다.



그것이 광개토왕 혹은 장수왕 시대의 기록이라 해서, 그것이 저 시대 사정을 후대의 다른 기록들에 견주어 진실성을 담고 있다고는 전연 생각지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거짓과 과장과 장광설로 점철한다.

이는 우리네 일상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자주 목도하는 현상이다.

같은 사안 같은 사건을 두고 얼마나 많은 말이 오고가는가?

둘째, 텍스트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오래된 텍스트일수록 소리나는대로 적는 경향이 더 강고하다.

제목에서 제시한 저 가차란 간단히 말해 소리만 빌려 적는다는 뜻이다.

뜻은 무시하고, 소리에만 치중한 텍스트 선호 경향이 두드러진다.

 

죽간



중국의 소위 출토문헌을 볼 적에 죽간이나 목간 혹은 비단에 적은 漢代 이전 문헌을 보면, 가차假借가 특히 두드러져, 액면 그대로 해석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이런 흔적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문헌에서도 남았으니,

장자인가 노자인가 혹은 순자인지 내가 자신은 없으나 그에서 빈출하는 僞를 곧이곧대로 거짓이라고 봤다가는 좃된다.

많은 경우에 이 僞는 爲에 지나지 않는다.

두 글자가 그때는 발음이 통해서 지 꼴리는 대로, 적는 사람 마음대로 소리만 빌렸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후대에 나온 텍스트가 훨씬 안전성이라는 측면에서 외려 더 믿음을 주는 일이 허다하다.

손자병법 판본으로 근자 저명한 것이 산동성인가 강소성에서 출토된 소위 은작산 한간銀雀山漢簡이란 것이 있다.

이는 현재까지 발굴된 손자 관련 텍스트 중에서도 실제의 손자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해서 보물처럼 취급된다.

우리한테 익숙한 손자 텍스트는 실은 삼국시대 조조가 주를 붙인 판본이 거대한 뿌리다.

 

건륭어서乾隆御書 죽간 손자병법



그 자신 학자요 장군이기도 한 조조는 손자병법을 중시해, 본인이 직접했는지, 아니면 꼬붕들을 시켜서 그리했는지는 알지 못하나, 직접 그 텍스트를 교감하고, 주석을 붙였다.

이것이 이후 확고불변한 정전의 지위를 누리거니와, 나중에 당대에 들어와서는 무경칠서武經七書에 편입되어 그 수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손자는 태평어람太平御覽과 같은 송대 백과사전에서는 갈갈이 찢어져 이곳저곳에 인용되기도 한다.

한데 이들 텍스트마다 문자 혹은 문구의 넘나듦이 발생하거니와, 이런 혼란 혹은 착란은 교감학이 발전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된다.

한데 텍스트 변용 양상을 보면, 손자에 가장 가깝다는 은작산 한간을 보면 곳곳에서 가차 현상을 발견한다.
무수한 가차가 발견되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 가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텍스트를 해석하면 X된다.

손자야 지금까지 텍스트가 살아남아, 그 후대 판본들을 기준으로 은작산 한간의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그렇지 않고 오래전에 망실해 버린 다른 문헌들의 죽백은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텍스트를 오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손자 역대 판본을 보면, 외려 후대에 나온 텍스트가 훨씬 안전성을 담보한다.

오래된 것일수록 안전하다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

(2017.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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