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달 전부터 상판때기 팔자주름 한쪽 중앙 부근에 망우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나무가 늙으면 옹이가 생기고 송진이 흐르듯이 뭐 그러겠지 했더랬는데, 줄어들 요량은 없고 점점 커져 이제는 육안으로 드러나기 시작해 그 속내까지 더하면 밤톨만해졌으니
더는 방치하면 아니되겠다, 오늘은 기필코 째서 짜리라 하고는 남영동 저택 인근 피부과를 가니, 이 피부과 무슨 환자가 이리도 많으니 바글바글 콩나무시루라, 좀 기다려 진찰을 받으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해서 그래도 된다 했더니
"이건 아마도 표피낭종 같은데, 피부과보다는 성형외과를 가셔야겠습니다."
고 하는 것 아닌가?
그 말 한마디 표연히 남기고는 진료비 6천원을 청구하는지라, 카드로 긁고는 기왕 나선 몸, 이대론 귀가할 수는 없다 해서 마눌님 급히 연락 취해 "근처에 성형외과 있는 데 알아바라" 했더니만 이내 용산역 근처 어딘가를 추천하면서 하는 말이 "다 후기가 좋네. 걸로 가지? 나도 동행하지" 하는 게 아닌가?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조심할 점이 있다. 일단 그쪽에 발을 디뎠다 하면 애초 생각한 공사비가 최소 10배는 불어나는 신통방통한 데라는 점이다. 내친 김에 이리저리 상담하다 보면 쏵 개비하는 전면 재건축으로 나도 모르게 빠지는 지라, 애초 생각한 하자보수 혹은 리모델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만다.
속지 말자 하며 들어섰는데, 이런 전차로 이곳에 왔소. 째서 짜야겠소 했더니, 블라블라 그건 5만원이라 하거니와, 한데 이런저런 상담하다 보니, 내가 궁금해 말을 꺼낸 것이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으니,
"이쪽 상판때기에 쩜이 많아. 이거 찌지는 건 얼마요?" 하니 쩜당 5천500원이라 하거니와, 그래 고스톱 치는 셈 치고, "한데 쩜이 많아서.." 하고 얼버무리고는
다시 내가 내친 김에 "쥐좆도 모가지에 막 생기네?" 했더니, 것도 한마리당 얼마라 한다.
이래저래 따지는 데 신경질이 나서 내가 그만
"한꺼분에 계산하는 건 없소? 얼굴 쏵 다 개비하는 돋때기 시장 같은 거 말이요?"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하는 말이
"호호호호, 점이고 쥐젖이고 갯수 상관없이 50만원이면 한꺼번에 해요"
오잉? 이런 게 있단 말인지?
순간 고민하며 마누라 얼굴 쳐다 보는데 "해라 해!" 하는 것이 아닌가?
마취 크림인지 잔뜩 발랐다가 대략 15분 20분쯤 지나고 나니, 얼굴 껍데기가 돼지껍데기라, 마취가 그런대로 된 모양이라, 마침내 레이저 아래 벌렁 자빠져 누웠는데
예의 젊은 원장이라는 친구가 들어오더니 마구잡이로 지지기 시작하는데, 따끔따끔 삼겹살 굽는 냄새가 솔솔 난다.
이게 마취를 했다지만, 통증이 부위별로 달라, 피하지방 없는 이마빡은 참말로 따끔타끔하고, 내가 턱 지름이 부족한지 턱 쪽도 따끔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터파기 끝내고는 메인 이벤트인 표피낭종 제거에 들어가는데
칼로 조금 째서 짜내는 고전적 수법이라, 마취가 되었다 하지만, 아파 뒤지는 줄 알았으니
나도 모르게 두 줄기 눈물이 질질 흘러내리니, 중늙은이 그 꼴 안쓰러웠던지 젊은 원장이
"아이고 눈물까지 흘리시네요?" 한다.
반창고 찍어 바르고 퇴약볕에 나서니, 마침 마취가 가시기 시작하는 시점과 맞물려 온 상판떼기가 따끔따끔이라,
뭘 하지 하면서, 그래 인근 뿌리서점이나 가 보자 하고 나섰으니, 가는 날 장날이라 오늘은 휴무라 문을 닫고 말았다.
개비한 도로로 나와 두 정거장 거리인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 너머로 서울타워가 불뚝하다.
백옥 같은 피부로 가출했다가 곰보 되어 돌아왔다.
야들아!
피부과 성형외과 상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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