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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거북등껍데기를 고려왕조에 바친 탐라국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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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를 읽다가>

문종 7년(1053) 2월, 개경에 멀리 탐라에서 온 손님이 도착했다.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이의 이름이...

탐라국耽羅國 왕자 수운나殊雲那가 아들 배융교위陪戎校尉 고물古物 등을 보내어 우황牛黃·우각牛角·우피牛皮·나육螺肉·비자榧子·해조海藻·구갑龜甲 등 물품을 바치므로, 왕이 〈탐라국〉 왕자에게 중호장군中虎將軍을 제수除授하고 공복公服·은대銀帶·채단彩段·약물藥物을 하사하였다. - <고려사> 권7, 세가7, 문종 7년 2월

고려시대에는 제주 소가 지금보다 더 유명했던 모양으로, 원 간섭기에는 탐라 소고기를 원나라 황제에게 꼬박꼬박 바칠 정도였다 한다.

거북씨 구조. 등딱지는 점복용이다.


전복과 비자, 미역이야 지금도 제주 명물로 유명하고, 거북이 등딱지도 제주가 섬인 걸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저러나 배융교위께서 얼마나 노안이었으면 이름마저 古物이었을까.


*** 편집자注 ***


거북등껍질은 점복용이었다. 고려사에는 국가중대사에 점복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다른 용도도 있었을 것이다.

우황牛黃은 약물이며, 우각牛角과 우피牛皮는 피혁 소재이면서 아교를 만드는 재료다. 나육은 저린 것이어야 식용이 가능할 터이며, 비자는 주된 용도가 약물과 더불어 바둑판 제작, 해조류는 건어물 형태였을 것이다.

고려시대엔 탐라에 지방관을 직파하지 않았다. 또 그곳이 고려 땅이라는 인식도 희미해서 저에 대해서는 이른바 사대교린을 유지했으니, 탐라는 고려에 사대하는 대신에 그에 따른 체제 보장을 얻었다.

저 오간 품목을 보면 교역임을 본다. 고려에 필요한 것들과 탐라에 필요한 것들이 교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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