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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목판은 어마어마한 문화재다.
필자 생각으로는
이건 한국 같은 크기의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볼륨의 문화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금속활자만 해도 적은 카피수를 다양하게 찍고 싶다는 욕망이 보이지 않는가.
한국적인 인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금속활자는.
반면에 고려시대 대장경 사업은
그 무지막지한 분량. 게다가.
초조대장경은 조판이 1011-1877까지 만들었다는 설이 옳다면
993-1018년의 고려거란전쟁의 후반기와도 겹치는 것이니,
전쟁하랴 대장경 만들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대장경을 두 번을 만들고
그 사이에 의천의 교장까지 있었으니
이 당시의 고려는 싸우고 남는 시간에 목판을 죽도록 팠던 셈이겠다.
참고로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은,
1236-1251년에 조판한 것으로
1231-1259년의 몽골침략 시기와 또 겹친다.
두 차례의 대장경조판으로 찍어낸 경전이 대략 초조대장경 6000권,
재조대장경 6000권 도합 12000권에 달했다고 하니
고려시대라는 시기는 가히 국력을 기울여 전쟁과 문화 사업 양쪽에 기울였다고 할 만 하겠다.
거듭 말하지만 이 정도의 대장경 조판은 한국 정도 크기의 나라에서 나오기란
어려운 정도의 볼륨임이 틀림없겠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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