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을 통용하는 교류 혹은 국제관계라면 으레 직접한 접촉을 말하지만, 천만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간접파동이다.
정보유통이 제한되었다고 생각하는 전통시대로 갈수록 이걸 따지는 작자가 그리 많은데, 내가 볼 땐 더 중요한 것이 직접 교유가 없는 교유다.
고창국과 고구려, 이들은 직접 통교가 없었다. 물론 있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없었다고 보아도 대과가 없다. 물론 당나라에 조공할 적에 사신단끼리 마주하며 필담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연 교유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고구려는 알고 있었다. 고창국이 망했다는 사실을. 그 망한 일에 고구려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하와 고려.
보다시피 서하와 고려가 직접 접촉할 창구는 없다. 가로 막힌 데다, 저쪽으로 가려면 일단 송이나 거란 국토를 횡단해야 하지만 뭐하러 간단 말인가? 얻을 게 있어야 갈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저 두 지역은 놀랍게도 교유했다. 어떤 방식을 통해? 정보를 통해 교유했다.
거란이 송을 이겼다는 소식을 전하자 고려와 서하가 달려와 축하하고, 서하를 쳐서 이겼다는 소식을 접하자 고려는 축하사절을 거란에 보내서 감축드린다는 알랑방구를 꼈다.
이런 방식으로 정보는 끊임없이 유통됐다.
발 없은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 이걸 하시라도 이른바 국제교류를 하는 사람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뭐? 그쪽 문물이 이쪽에서 보여야 국제교류? 이건 매양 말하지만 개돼지나 하는 일이다.
묻거니와 개돼지이고픈가 사람이고픈가?
국사가 아닌 세계사를 해야 하는 단적인 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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