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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공터를 찾아 도성을 만든 중국 일본이랑 한반도는 다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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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가 출범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새로운 도읍 건설이라, 이를 찾아 신왕조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비교적 잘 알려졌거니와 한때는 계룡산 기슭도 검토되었다는 사실 역시 잘 안다.

그 절대 조건으로 풍수를 들지만 이는 실상 개소리라, 풍수가 맞다 해도 문제는 거기에 도시가 들어서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는 자주 망각되는 게 아닌가 하는데, 신도시 건설 제1 조건은 공터다.

이 공터는 또 제반 조건이 있으니, 무엇보다 강이 흘러야 하지만 이 강은 이율배반이라, 그러면서도 홍수 침패 우려가 적거나 없어야 한다. 
 

이런 바둑판식 도시 계획은 계속 말하지만 빈터에서나 가능하다.

 
그렇게 고심한 한양만 해도 잦은 청계천 범람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그것을 준설한 영조의 회고를 보면 안다. 지금의 경복궁 창덕궁 일대? 

간단하다. 범람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라 선택한 것이지 무슨 풍수지리? 웃기는 소리 작작들 했음 싶다.

풍수설은 그것을 선택하는 기반이 아니라, 고르고 나서 훗날 견강부회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지어놓고선 와 풍수상 좋은 길지吉地다 개사기 친 것이다. 

왜 도성 왕성 혹은 왕궁 같은 신도시는 빈터를 찾아 헤매는가? 돈 때문이다. 돈! 

나는 항용 역사를 볼 적에 돈 문제를 생각하라 했다. 신도시 건설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현대 사회에서도 그대로 본다.

이 논점 전근대 역시 유효해서, 아무리 저곳이 신도시에 적합하다 해도 도시가 들어가 있음 불가능하다. 

도시가 들어가 있는데 그곳에다 신도시를 건설해? 그 막대한 보상 비용은 무엇으로 마련한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이는 상대로 관련 기록이 남은 고대 일본을 보면 더욱 분명한데, 아무리 공터라 해서 골랐지만, 거기에 어찌 사람 흔적이 없겠는가?

기존에 사는 사람이 적지만 없을 수가 없고 무엇보다 무덤이 있기 마련이라, 이런 데다 신도시 건설을 표방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묘지 이장이다. 

이것이 고대 일본 기록을 보면 더욱 분명한데, 그 이장 비용은 당연히 국가에서 부담한다. 국가에서 부담하지 않고 알아서 옮기라? 웃기는 소리 그만해라. 칼 맞는다. 반란 일어난다. 

그래서 대체지를 확보하고 그것을 분양해 이쪽으로 거주지나 무덤을 옮기라 한다. 이게 다 돈이다. 

그래도 그 막대한 비용 절약한다 해서 어찌했는가? 기존 도성 왕성을 구성하는 건축물 자재 중 쓸 만한 것은 모조리 옮겨간다. 옛날 기록을 보면 무슨 건물을 뜯어 무슨 정자를 만들었다 하는 대목이 그리 많은 이유가 다 돈 때문이다. 

심지어 옮겨가는 재활용 건축부재 중에 주초도 있다. 그래서 옛날 일본 왕성 유적을 파면 주초는 있었던 흔적만 있고 그 돌들은 모조리 빼갔음을 본다. 이걸 새로운 왕궁으로 옮겨가 썼던 것이다. 어찌 옮겼을까? 소로 옮겼지 말로 옮겼겠는가? 

이런 대목들까지 다 종합해서 봐야지, 신도시 건설 혹은 왕궁 도성 연구 내가 보건대 작금 어린아해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은 하나도 고려하지 아니하고 개소리만 넘쳐난다. 

이 도성 건설에 따른 돈 문제를 지적한 논문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 관련 논문에서 단 한 편도 보지 못했다. 돈을 고려하지 않은 역사학 고고학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고민해 봤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중국의 경우 가장 오랜 기간 수도로 애호받은 데가 낙양과 더불어 황하 변 장안이라, 지금은 서안西安이라 하는 이곳은 가 보신 분들은 너무 잘 아시겠지만, 황토고원 지대라,

산다운 산은 몇 군데 되지도 않은 허허벌판이라 신도시를 건설하기 안성 맞춤하는 데라

새로운 왕조가 출현할 때마다 기존 자리를 피해서 신도시 건설을 감행했으니, 왕조별로 저렇게 토끼 뜀뛰듯 저런 방식으로 빈 공터를 찾아 신도읍을 건설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안이 절대 유리한 점은 첫째 넓은 고원지대라 대지를 확보하기 쉽고 둘째 장안은 극심한 전란에 보통 난리통 한 번 만나면 기존 건축물이 모조리 불타버리고 폐허가 되었다는 데 있다. 

잦은 교체가 문화재 관점에서는 아주 안 좋지만, 그때가 무슨 문화재 보호 관념이 있었겠는가? 방화 약탈이 자연히 기존 도시를 쓸어버려 주니, 그렇게 몇 백년이 흐르면 그 자리에 새로운 왕조가 출현해 신도시를 건설하곤 했던 것이며, 그것이 아니라 해도 신도시를 건설할 공터가 많아 그곳을 찾아 물색하고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래서 바둑판식 도시건설이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 똑같다. 

이 친구들 도성은 특징이 대개 100년을 안 간다는 사실인데, 물론 예외는 있지만, 툭하면 이사를 다녔다.

심지어 왕별로 별도 궁성을 만들기도 하니, 이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왜 이리 자주 옮겨다녔는가 그 이유는 쉽사리 단안할 수도 없지만, 평지 도성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똥오줌이다.

도시가 발달하고 100년을 가면, 이 똥오줌 처리가 심각해지고, 그것이 쌓여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하며, 들끓는 오물은 각종 질병을 야기한다. 

나는 그걸 피해 다녔다고 본다. 

신라 또한 이런 움직임이 딱 한 번 관찰되는데, 삼국을 일통하고서 조금 시간이 흐른 신문왕시대에 달구벌 천도를 획책한 것이다.

이것이 시도하다 중단되어 버리고 말았거니와 이걸 두고 논문 수십 편이 쏟아져 나왔는데 다 개소리라, 돈 때문이지 뭐겠는가?

권력 역학관계? 웃기는 소리들 좀 작작해라. 결국 돈 문제였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두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문 수십편이 쏟아져 나온 게 이해되는가?

단 한 놈도 돈 얘기를 안 했다는 게 신통방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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