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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교착한 사도광산을 뚫은 작은 전시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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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서 일부러 그랬는지, 도대체 이 친구들 정신머리가 어디 가 있는지 이 중요한 사안의 증거물이라 해서 일본이 내어놓았다는 사도광산 현지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전시관 사진은 도대체가 쓸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내가 AI로 증폭했다. 

틀림없이 일본 외교부 쪽에서 한국 외교부로 넘긴 자료일 텐데, 그것이 아니라면 직접 가서 확인하고 찍었다면 어찌 다음과 같은 거지 같은 사진을 내어놓겠는가?

 

 

이게 외교부가 배포한 원본 혹은 그에 가까운 사진이다. 

어떻든 한국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이번 등재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증거가 바로 저것이라 하는데 

그들이 이르기를

 

사도광산에서 2㎞ 정도 떨어진 기타자와 구역 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설치된 전시시설에는 ▲ 노동자 모집·알선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음을 설명하는 패널 ▲ 임금 채무 기록 ▲ 한국인 노동자 노동쟁의 기록 ▲ 일본 총리 과거사 관련 발언("마음 아프게 생각") 등과 같은 자료가 다수 포함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시실의 자료들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획 자체가 한일 간 협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라는 것이어니와, 나는 그 실효성을 의심하거니와 무엇보다 그 위치가 문제이며, 나아가 저건 흉내만 내다 만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도 한국이 필요했던 것은 명분이므로 그 명분을 살리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바위는 빗방물 하나에 뚫리기 시작한다. 과거사 관련 일본측 반응 혹은 공식대응이라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2000년대 접어들어 하나씩 변화하고 있는데, 그래도 일본이 일본정부를 대표해서 이번 델리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조선인이 저 광산으로 동원되어(강제라는 말을 썼는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각종 혹독한 조건에 혹사당했다는 논급을 한 것이 어딘가?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거니와 그 발판을 2015년 군함도에서 마련했다는 사실은 대서특필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왜?

그 발언은 당시를 기준으로 미래를 구속하기 때문이며, 실제 이번에도 그것을 일정 부문 구속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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