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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구제역이 작살 낸 고향

<구제역 방역..연합DB>

소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1년 2월 4일 설날 무렵 고향 풍경 일단을 읊조린 과거 블로그 글인데, 이 시대를 증언하는 한 단면이라 생각해 전재한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왔다는 말에 전을 부치던 老母는 반가움과 더불어 떠들지 말고 빨리 방에 들어와 조용히 있으란다. 그만큼 고향은 뒤숭숭했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동네 서원 앞마당에는 외부에서 온 차량이 빼곡해야 하지만, 올해는 김천역에서 우리 가족을 실어온 동생 차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고향 명절이 명절답지 않다고 여겼거니와,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한 까닭은 바로 구제역 때문이었다. 듣자니 소를 키우는 옆집, 뒷집에는 아예 자식들이 오지 않았단다. 동네에서도 제 아무리 이 동네 출신이라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일까? 새로 생긴 김천(구미)역에서 KTX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는 여느 명절과는 다른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으니, 올해 명절은 되도록이면 현 거주지에서 보내자고 했다. 고향땅을 밟지 말란 소리와 진배없다. 동네 어귀 곳곳에는 석회가루가 잔뜩 뿌려졌다. 저것이 구제역을 방지하는지 못하는지는 알 수가 없거니와, 그렇다는 믿음 아래 동네 곳곳이 석횟가루다.

<구제역 근절 위한 석회 뿌리기..연합DB>

내 고향 양지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10리 정도를 올라가면 새재라는 마을이 나오거니와 말 그대로 고갯마루 밑 마을이며 그곳에는 봉곡사라는 직지사 말사의 비구니 사찰이 있는 寺下村이기도 하니, 으레 이런 마을엔 소를 많이 키운다. 듣자니 이 새재에서는 아예 외부와 통하는 도로를 봉쇄했다는 말도 들리거니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제역이 턱밑 상주까지 치고 왔다니 자칫하다간 소 다 죽일 판이니 그 날카로운 신경이야 소치는 사람만이 알리라.

이처럼 이번 설날은 소 때문에 개판이 됐다. 소가 고향을 작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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