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

번데기를 먹는 인간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19.
반응형

<낙안읍성에서 어제>


우리 집은 어린 시절에 누에를 쳤다. 이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꼭 이맘쯤이라, 뽕에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누에 농사를 시작한다. 누에를 치는 방이라고 그 좁은 산골 마을에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일상 주거공간이 곧 누에실이라, 우리가 자는 방엔 시렁을 쳐서 칸을 만들고, 그 칸마다 누에를 슨다. 


누에 치는 방은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온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군불을 때야 한다. 그런 뜨끈한 방에서 누에랑 우리는 기거를 함께 한다. 누에가 자라는 속도는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광년光年이라, 이것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엄청 쳐먹기 시작한다. 쉴새없이 뽕을 따다 날라야 한다. 


젤로 곤혹스러운 때가, 누에가 한창 자라기 시작하는 무렵이라, 이때는 언제나 뽕이 모자라기 마련이다. 새순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따가 먹이니, 다시 새순이 나기 전까지 뽕은 언제나 모자란다. 그 모자란 뽕을 보충하겠다고, 새벽부터 깊은 산을 올라 온산을 헤집으며 산뽕을 찾아 딴다. 한데 산뽕이라고 많을 리는 없다. 더구나 산뽕은 산에서 자라는 까닭에 평지의 그것보다 언제나 늦게 순이 나고, 성장이 더디다. 


<뽕 먹는 누에>


누에는 온도에 민감하고, 주식에 민감하니, 뽕에 빗물이 머금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비가 오는 날 누에를 굶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가 흠뻑 젖은 뽕은 일일이 물을 털고 닦아서, 주어야 한다. 봄철엔 뽕은 뽕밭에서 일일이 순을 따지만, 뽕이 무성해지는 여름철이면 아예 줄기째 잘라 집으로 실어나른다. 그렇게 실어나른 줄기뽕은 집에서 온 식구가 매달려 이파리를 딴다. 그래서 고이 먹여준다. 


불이 꺼진 누에방. 칠흑을 방불하는 그 밤에도 누에는 쉴새 없이 뽕을 먹어대는데, 사각사각 뽕을 갉아먹는 소리는 묘하기만 하다. 그런 누에도 자라면서 이젠 기어다니기 시작한다. 스멀스멀 기어나니다가 방바닥을 내려오기도 하고, 심지어 떨어지기도 한다. 다음날 깨어보면 등때기에 눌려 터져버린 누에가 흥건하다. 뽕 먹은 누에는 색깔 역시 뽕색이라 퍼렇다. 그렇게 생긴 얼룩은 아무리 빨아도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렇게 누에를 키웠다. 농가 소득원이었으니, 우리 동네에선 어느 집이건 누에를 쳤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누에가 나중에는 하얀 누에집을 치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서서히 번데기가 되어간다. 그 하얀 누에고치가 바로 비단 원료다. 누에 고치를 면도날 같은 것으로 베어보면, 그 안엔 번데기가 있다. 


<알록달록 오색 고치>


그런 번데기를 나중에 서울로 유학하고서 길거리에서 만났는데, 세상에 나, 그걸 삶아서 우거적우거적 쳐먹고 있는 게 아닌가? 누가? 사람이 말이다. 그것 맛있다고 우거적우거적 씹어대는 년놈들이 제정신으로는 안 보였다. 번데기를 볶거나 삶을 때 나는 그 특유의 냄새만 맡아도 나는 구역질이 나왔다. 어째서 번데기를 쳐먹는단 말인가? 


그런 번데기를 내가 겨우 입에마나 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대략 20년이 흘러서여였다. 지금도 나는 번데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뭐 요샌 개새씨가 왕 노릇 하는 시대라, 개새기를 아끼는 사람들이 개새끼를 가족이라 해서 애지중지 하는 모습을 많이 보거니와, 번데기에 대해서도 그와 비견하는 배려를 해주었으면 한다. 

 

<고구마색 누에>


 


반응형

'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과도 같은 나날들  (0) 2018.03.21
구제역이 작살 낸 고향  (0) 2018.03.20
포대화상의 시대  (0) 2018.03.18
카이사르에서 시저로, 시저에서 짜르로  (0) 2018.03.14
기자사회와 골프, 내가 본 꼴불견  (0) 2018.03.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