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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굴산성屈山城을 향해 달리는 옥천 이성산성 沃川已城山城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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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cheon-gun County, Chungcheongbuk-do Province, will conduct a full-scale excavation investigation into Iseongsanseong Fortress in the county.

 

This excavation, which will start next month and continue until the end of this year, will focus on checking whether Iseongsanseong Fortress is Guseongsan Fortress in the "Samguk Sagi"' or "`The History of Three Kingdoms". 

 

The Samguk Sagi has it that in his eighth year (486 years), King Soji of the Silla Kingdom ordered General Siljuk to rebuild two fortresses Samnyeon and Gulsanseong by recruiting 3,000 workmen in the area of ​​Ilsun-gun County. 

 

The Cheongseong-myeon area, where this fortress is located, was called Gulsan during the Silla period, and in the previous excavation survey, it was found that this fortress was built by Silla around the 5th century. In that regard, Okcheon-gun County expects tha it was highly likely that Iseongsanseong Fortress was Gulsan-seong in the 5th century. 

 

 

Iseongsanseong Fortress

 

 

The current name of Iseongsanseong Fortress is found in the Joseon Dynasty documents.

 

Iseongsanseong is a fortress with 1,140m circumference and 5,160,160㎡ of inner area, its bedrock layer was trimmed in steps and then soil was piled on it.

 

In an excavation survey around the western wall in 2015, the Silla era artifacts, such as pieces of roof tiles with stripes and pieces of mounted dishes were discovered. 

 

 

"옥천 이성산성, 신라시대 굴산성일까"…발굴에 속도 | 연합뉴스

"옥천 이성산성, 신라시대 굴산성일까"…발굴에 속도, 심규석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6-14 09:36)

www.yna.co.kr

 

충북 옥천군이 군내 이성산성이라는 삼국시대 고대 성곽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승격하기 위한 일환으로 조만간 본격 발굴조사를 하기로 한 모양이라, 이를 위해 지난달 시굴조사를 한 데 이어,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유적 처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자문회의가 18일 연다고 한다.  

본발굴은 7월에 시작해 오는 10월 혹은 11월까지 계속할 예정이라 하거니와, 조사 핵심은 이성산성이 신라시대에 축조된 굴산성屈山城인지 여부를 확정키 위함이라 한다. 굴산성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인근 보은군 삼년산성과 같은 시기에 쌓은 산성이라 하고, 마침 이 산성이 위치한 청성면 일대를 신라시대에는 굴산현屈山縣이라 불렀다 하니, 이런 점에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옥천군이 문화재와 관련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인 흔적을 나로서는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조사 계획은 주목해도 좋다고 본다. 

 

그건 그렇고 옥천 이성산성은 내가 기억에 좀체 없는 생소한 유산이라 관련 기사를 우리 공장 DB에서 검색해 보니 아래가 걸린다. 

 

 

Iseongsanseong Fortress

 

 

 

2015.10.29 10:19:01
옥천 이성산성, 5세기 신라가 쌓은 토성으로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옥천 이성산성(已城山城)이 5세기 중엽을 전후해 신라가 축조한 토성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옥천군과 국강고고학연구소가 10월 5일부터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 산 29번지 일원에 있는 이성산성의 서쪽 성벽 25m를 발굴조사한 결과 성벽의 흙에서 섞여 나온 유물로 미뤄 5세기 신라 토성으로 추정된다고 29일 밝혔다.

이성산성은 해발 115∼155m의 구릉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천140m이고 면적은 5만9천160㎡이다. 성벽의 너비는 하단부를 기준으로 최대 15.4m이고, 높이는 약 3.5m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이성산성은 중심 토루(土壘, 흙으로 둘러쌓은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흙을 덧붙여 올려 축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선무늬가 있는 기와조각과 굽다리 접시 조각 등 많은 신라 유물이 출토됐다. 

 

또 중심 토루에는 나무로 만든 틀에 흙을 켜켜이 다져 넣는 판축기법이 사용됐고, 성벽의 일부는 돌로 개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조사 지역 남쪽에서는 전망대를 조성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가 발견됐다. 

 

조사단은 "470년 신라가 쌓은 석성인 보은 삼년산성이 이성산성 인근에 있다"면서 "신라가 삼년산성 이후에는 대부분 돌로 성을 조성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성산성은 삼년산성 이전의 축성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고 말했다.

 

조인규 국강고고학연구소 조사연구팀장은 "삼국사기에 5세기 후반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성산성이 굴산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는 오는 30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공개된다.

 

 

 

Iseongsanseong Fortress

 

 

내가 문화부에서 쫓겨나고 전국부 가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 자리를 메운 박상현이도 버벅거리던 시절이라, 관련 기사는 문화재청을 통해 옥천군이 제공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니 이 보도자료가 토대다. 

 

옥천 이성산성, 5세기 신라 토성으로 확인
등록일 2015-10-29 주관부서 발굴제도과

 

- 10.30. 오후 2시 발굴현장 일반 공개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옥천군(군수 김영만)과 (재)국강고고학연구소(소장 차재동)가 10월부터 진행 중인 ‘옥천 이성산성(沃川 已城山城)’ 발굴조사 결과, 이성산성은 5세기에 축조된 신라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옥천 이성산성은 해발 115~155m 높이의 구릉에 쌓은 산성으로, 구릉 정상부 능선의 자연지형을 따라 축조되었다. 성곽의 전체 둘레는 1,140m, 면적은 약 59,160㎡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개축굴산성(改築屈山城)’의 굴산성으로도 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성곽의 서벽에 해당하는 길이 약 25m의 성벽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조사결과 옥천 이성산성은 5세기 신라 토성으로 확인되어, 신라의 북방 진출과 삼국통일의 교두보였던 ‘보은 삼년산성’(사적 제235호) 이전의 토성 축조 방법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밝혀줄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

 

 

Earthen Wall 

 



성곽은 중심 토루(土壘, 흙으로 둘러쌓은 성벽)와 내‧외 토루로 이루어진 토축성벽이며, 일부 외벽은 석축으로 개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선문(線文) 기와편, 고배(高杯, 굽다리 접시)편 등 신라 5세기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성벽은 하단부를 기준으로 최대 너비는 15.4m이며, 높이는 외벽 하단부에서 상면까지 3.5m 정도이다. 중심 토루의 규모는 석축열 조성으로 인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었으나, 석벽을 기준으로 약 7.6m까지 확인되며 높이는 2.1m 정도 남아 있다.

아울러 토층조사를 통해 중심 토루는 나무로 만든 틀에 흙을 켜켜이 다져 넣는 ‘판축기법(版築技法)’으로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판축 시 판재를 지지하는 나무기둥인 영정주(永定柱)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한편, 조사지역의 남쪽에서는 성벽에 덧붙여 쌓은 돌무더기가 발견되었다. 남서쪽의 평야지대와 추정 서문지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이곳의 지형과 위치적 요인으로 미루어 보아, 이 돌무더기는 전망대를 조성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또한, 성 내벽과 바닥면에서는 석축시설과 플라스크 모양의 대형 수혈(竪穴, 구덩이) 등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30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재)국강고고학연구소(조인규 조사연구팀장, ☎033-263-9500)로 문의하면 된다.

* 발굴현장: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 산 29번지 일원

 

 

Relics from Iseongsanseong Fortress

 


이때 발굴성과를 기초로 2017. 04. 07에 옥천 이성산성은 충청북도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이성산성 소개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다. 

 
충청북도기념물 제163호
옥천 이성산성 (沃川 已城山城)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 / 면적 : 1곽(40필지, 93,996㎡)
지정(등록)일 : 2017.04.07
소재지 :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 산 20-1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세문의 : 충청북도 옥천군 문화관광과 043-730-3413, 3415


○ 산성현황 : 둘레 1,140m 면적 59,160㎡

○ 성벽의 축조는 1차적으로 기반암층을 계단식으로 정지한 후 그 위로 토축하였으며, 성벽 상면에는 판축틀을 설치하여 토축함. 일부 구간에서 성벽 보강을 위해 석축으로 개축한 것이 확인됨. 
- 최대 너비 15m, 높이 3.5m 

○ 중앙토루에서 내부에서 확인된 출토유물로는 2단투창 대각편 및 토기 등으로 볼 때 최초 성벽의 축조는 5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됨. 이후 폐기된 수혈유구 내부에서 단각 고배편 인화문 토기 등이 수습되어 6세기말~7세기경 성벽의 개축이 이루어짐.

 

옥천군이 우리공장 심규석 부장한테 제공한 이성산성 정리는 아래와 같다. 

 

 

옥천 이성산성(요약).hwp
0.49MB

 

 

옥천 이성산성 
  
□ 입지현황 
이성산성은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 산20-1번지 일원의 해발 115~155m 높이를 이루는 독립구릉 상에 축조한 산성.

 

이성산성에서 북쪽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장연리~화성리 지역의 고개를 통과하면 곧바로 보은군 삼승면 지역에 이르며, 이곳부터는 곧게 펼쳐진 평지를 따라 보은 삼년산성으로 이어짐. 

 

산성의 동쪽으로는 보청천 천변을 따라 청산면 중앙부를 통과한 후 북쪽으로 꺾어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와 보은 관기산성을 지나 삼년산성까지 이어짐.

 

산성의 남쪽으로는 보청천을 건너 천관산 줄기의 밤재와 장군재의 고개를 넘으면 영동군 용산면 지역에 닿으며, 용산으로부터는 황간을 거쳐 추풍령을 넘어 영남지역으로 이어짐.

 

서쪽인 옥천읍 지역으로 나가는 통로는 소백산맥 줄기에 막혀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지만 곡류하는 보청천을 따라 이어짐. 

 

★ 예부터 주요 교통로 상의 위치 

□ 연혁 

󰡔 삼국사기(三國史記)󰡕 : 첫 기록
新羅本紀 炤知麻立干 八年 春正月에 拜伊湌實竹爲將軍 徵一善界丁夫三千改築三年·屈山二城

소지마립간 8년(486년)에 이찬 실죽 제수하여 장군으로 삼아 일선군 지역의 장정 3천을 징발하여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已城山石城在縣西六里 周回三百三十七步 險阻內有井一冬夏不竭有軍

이성산석성이 현의 서쪽 6리에 있으며, 주위 337보로 험조하며, 성내에 우물 1개가 있고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으며, 군창이 있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已城山城 在縣西八里 石築周二千九十一尺 高八尺 內有一井有軍倉

이성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의 명칭으로 청산현의 진산이라는 사실과 함께 조선초기부터 군창이 설치되어 지속적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음

이후 조선후기 기록인 『여지도서(輿地圖書)』, 『호서읍지(湖西邑誌)』는 고적에 성곽의 명칭만 기록하고 지금은 폐성되었다고 간략히 기록되어 있음

 

□ 가치
산성의 연대를 통해 한국 고대사 중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는 과정(영역확장)을 규명하기 위한 편년 자료

 

신라가 경주 이외에 지역에서 쌓은 성으로 중앙과 대비되는 지방의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유적
- 신라 토성에 대한 발굴조사 및 축성기법에 대한 연구가 거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신라토성의 축성기법에 대한 많은 의문을 해결할 자료

 

굴산성으로 비정될 경우 절대연대가 확인되는 유일한 토성으로서 한국 고대 성곽의 기준이 될 만한 중요한 성으로 파악됨 

□ 특징
산성현황 : 둘레 1,140m 면적 59,160㎡

 

성벽의 축조는 1차적으로 기반암층을 계단식으로 정지한 후 그 위로 토축하였으며, 성벽 상면에는 판축틀을 설치하여 토축함. 일부 구간에서 성벽 보강을 위해 석축으로 개축한 것이 확인됨. 
- 최대 너비 15m, 높이 3.5m 

 

중앙토루에서 내부에서 확인된 출토유물로는 2단투창 대각편 및 토기 등으로 볼 때 최초 성벽의 축조는 5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됨. 이후 폐기된 수혈유구 내부에서 단각 고배편 인화문 토기 등이 수습되어 6세기말~7세기경 성벽의 개축이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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