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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풍 없는 집에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
똥통에 오래 앉아도 다리 쥐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꿈이었다.
한겨울에도 빤스 바람으로 날아다니는 뜨신 방이 꿈이었다.
쇠죽 끼린 누른 물에 갈라터진 손등 때를 미는 게 아니라 뜨신 매양 퍼붇는 데서 노상 모욕하는 게 꿈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씨게토 타다 적신 나이롱 양말 말리다 눌어붙어 엄마한테 부지깽이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때는 그랬다.
(201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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