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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그 많은 경화사족은 다 어디로 갔을까

by 신동훈 識 2026.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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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화사족-. 

흔히 서인 독재가 시작된 조선후기에나 등장한 것처럼 역사책에는 써 놨지만

앞에서 필자가 쓴 대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도 근방의 사족들이 절대 우위를 점하지 않은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조선후기에나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조선시대 선비 집안 하면 지방의 사족들이 하도 떠드는 통에 

마치 우리나라 역사는 이들 향촌 사족들이 주도하고 좌지우지한 것 같이 보이고, 

심지어는 몇몇 좀 잘 나갔다는 집안들이 자기들은 국반이니 도반이니 하며 보학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들이 오가지만

이런 분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는 그 전 시기 내내

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바글 바글 모여 살았던 사족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주이씨가 가장 우위를 점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현재의 조선시대 사족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왜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도를 중심한 사족들의 권력 독점은 문과 급제자 수에서 잘 드러나니 전체 합격자의 절반 가까이가 서울 근교에서 나왔으니, 

과거 합격 후 환로를 타고 출세하는 이들까지 따진다면 거의 고관대작까지 올라가는 이들은 서울 근교의 사족들이라, 

얼마전 소개한 영남 지역의 만인소 등에서 사족 만 명이 모여 서명했다는 기록도 

전체 서명자를 보면 그 중 절대다수는 유학이고, 생원 진사 (솔직히 진사도 별로 없다. 소과 급제자는 지방은 거의가 생원)도 별로 없었으니, 

이런 것이 우리나라 조선 후기가 되면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제대로 된 사족은 거의가 서울 근교에 머물러 살았던 바,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으니, 

그렇다면 그 서울 근교에 살았다는 잘나가는 힘 있는 사족들-. 

이들은 죄다 어디 가버리고 요즘은 시골 선비 집안들만 남아 명문 대작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우연의 소산이 아니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전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정말 잘 나갔던 서울 근교의 사족들이 19-20세기를 거치면서 과연 어찌 되었는지, 

그 추이는 필자가 언젠가 이 블로그에 한 번 풀어 놓을 기회가 있으리라 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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