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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선친보다 1살 많은 김형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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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철학자 김형석 "불행한 경험, 손해 아닙니다"

송고시간 | 2019-08-20 15:28

옛글 모은 에세이 2권 출간…"젊은이들 외국 진출해야"

"진보·보수 갈등 넘어 열린 사회 지향하길"


김형석 선생을 흔히들 철학자라 하는데, 내가 접한 그는 우리네 갈래 기준으로 하면 수필가에 가까워, 실제 내가 젊은시절에 접한 그의 글은 생활철학과 관련해 부담감 없는 그런 글들이었다. 따라서 내가 아는 한, 선생은 법정스님과 같은 부류다. 


그럼에도 그가 철학자로 여전히 일컬어지는 까닭은 이른바 대학 전공 기준으로 그런 분야에서 오래 몸담은 까닭이고, 실제 그는 연세대 철학과에서 계속 봉직했다. 철학과 교수를 우리는 대체로 철학자로 부르는 것이다. 


내가 이 대학에 입학했을 적에 그는 막 정년퇴직한 상태였다. 교양강좌가 개설되지 않았었나 하는데,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는 그냥 푸근한 할배였다. 




이 할배가 나한테는 좀 묘한데, 언젠가 말했듯이 저 세대 사람들은 나한테는 항상 선친 기준으로 판별되곤 하거니와, 그는 1920년 대정大正 시대, 정확히는 다이쇼 9년에 태어난 사람이다. 선친보다 한 살이 많다. 그런 그가 언젠가부터는 차곡차곡 한 살을 쌓아가더니 마침내 백수를 채우니, 나로선 기이하기만 하다. 


선친은 떠난지 오래라 이젠 얼굴도 가물해질 지경인데, 그보다 한 살 많은 저 냥반은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니 말이다. 더 놀랍게도 그는 윤동주와도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았다. 그런 그가 여전히 올해 강의만 해도 150회가 잡혔다고 하니 어찌 기이하지 않겠는가? 


이런 그에게 자연 장수비결을 묻는 말이 많으며, 그에 대해 그 자신이 내놓은 답변이랄까 하는 말이 많았다고 기억하지만, 내가 보는 장수의 비결은 암것도 아니라, 첫째는 운빨, 두번째는 조상빨이다. 그의 출생 연대와 젋은시절 이력을 볼 적에 (실제 그러했는지는 내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학도병으로 끌려가야 했고, 얼마 안 있어 한국전쟁에 휘말렸고, 이후에도 생명의 위협까지 될 만한 사건이 오죽이나 많았겠는가? 그런 것들을 용케 넘어 오늘날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니 어찌 운빨이 따르지 않았다 하겠으며, 더구나 건강을 유지하니, 그것이 그런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조상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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