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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내가 찾은 유일한 피임방식 질외사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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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
2020-01-16 11:02

나는 언제나 콘돔이 대표하는 근대적 의미의 피임도구가 상륙하기 전 이 땅의 피임避姙 방식 혹은 도구가 궁금했으니 여직 그 의문을 풀지 못했다.

그것을 명시 혹은 암시로 보여주는 흔적을 좀체 찾지 못한 까닭이다.

현재까지 그나마 편린으로 잡힌 것이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오씨 이야기라..이건 고려사에도 저록된 유명한 이야기라 남자가 배설을 밖에다 하는 방식을 피임 방법으로 유추한다.

질밖 ejaculation이 얼마나 전통시대 피임방식으로 선호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암튼 이를 통해 전통시대 우리네 조상 피임방식 일단을 본다.

 

 

 

예서 관건이 기생들이다. 이 기생들한테 임신은 심대한 생업의 장애다. 저들이 모두 왕건과 장화왕후 방식을 썼다고는 보지 않는다.

정식 부부 관계에서도 여러 이유로 낙태를 위한 몸부림 흔적이 간헐로 보이긴 하는데 간장을 막걸리처럼 들이켰네 마네 하는 전설이 좀 있다.

혹 저 책에서 그 일단이라도 잡지 않을까 해서 집어왔다. 아직 본문은 들어가지 아니했는데 내가 궁금한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이는 내가 구상하고 논문 몇편으로 긁적이기도 한 월경 문제와도 연동한다.

 

왕건王建과 장화왕후莊和王后 만남 장소라는 데 세운 전남 나주시 송월동 완사천浣紗泉변 기념 동상. 이곳 출신 장화가 나주에 출정 온 왕건한테 물을 건네는 모습을 형상화했지만, 이 만남이 더 드라마틱한 장면은 이것이 아니라 질외사정이다. 다만 그걸 형상화하기는 곤란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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