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상추 일기를 보면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서얼에 대한 공포다.
이 시기는 영조말-정조 연간에 해당하는데
서얼들은 적자 후손들에게 족보에서 "서자"라는 말을 빼 줄 것을 요청하는 바,
눈치를 보면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하면서, 압박하면서 이를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노상추 일가는 서자라는 말을 그대로 족보에 계속 써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라
마지막 순간까지 족보에서 이를 관철하려 하는데,
서자 쪽에서는 노상추 일가에게 찾아와 족보의 원고를 찾아 자기들 계보에서 서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면전에서 공박하며 갈 때는 그 페이지를 찢어서 들고 가버리는 것이다.
노상추 일가가 두려워 하는 것은
서자라는 기록을 족보에서 빼버렸을 때
자신의 집안이 적장자에서 밀려날 것에 대한 공포,
그리고 서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노상추일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 이것인데,
영조 말기-정조 연간에 서자들의 신분 상승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후기 내내 서자들의 신분상승과 허통에 대한 요구는 집요하게 이루어진바,
19세기 들어 유학의 급증은 바로 이러한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겠다.
그러고 보면,
노상추 일가가 두려워하였듯이 서자들이 적장자를 차지해버린 집안이
과연 정말 없었을 것인가?
필자는 그런 집안도 있었을 것이라 본다.
노상추일기에 나오는 서자들을 보면,
이들은 돈이 있고 세상사에 능통하여 수단이 좋은 사람들로
협박이 필요한데는 협박을 하고 재물로 막는데는 재물로 막고
양반이 되기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라,
가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북전쟁이후 스칼렛 오하라 같은 이들이라 하겠다.
결국 어디나 최후의 승자는
근성있는 이들이 남게 되는 법이니,
필자는 구한말 이후 흥기한 집안들이 너도 나도 개나 소나 모두 명문집 후손이라 주장하는바,
그런 주장 하나도 믿지 않는다.
그 중 태반은 아마 조선 후기 신분 상승한 집안들의 후손으로
명문으로 대부분 세탁했을 것이라 보며,
그런 근성은 대대로 명문 집 자손 소리 들어가며 번영하던 집안 구석에서는
절대로 만들어 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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