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에 대해 전혀 모르지 않는 분들이
답답하게도 우리 집안은~ 이라 하며 족보의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로 믿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집안이 명문 집안이고 자신의 계보가 그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자신이 명문이라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겠다.
어느 집안에 여말선초에 모두 18개 지파가 성립되었다.
라고 그집안 대동보는 설명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족보를 변천을 탐구하여 보면 실상은 다르다.
17세기 초반에 성립한 가장 이른 시기 족보를 보면 지금 현재 후손이라 하는 18개 지파 중
단 9개만 확인된다. 나머지 9개 지파는 모두 그 후에 추가된 것이다.
이 추가된 스토리는 다양하지만 그 이야기를 모두 다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처음 족보에 들어가 있던 그 9개 지파.
이 지파가 이 집안의 사실상 중심씨족이며 그 후 추가된 종족들은 아무래도 세가 약하다.
우리는 어떤 집안이 어떤 시기에 열 몇 개 지파로 나뉘었다고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지파들이 성립한 시기가 모두 다르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대인 12지파 유래와 성립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이설이 나오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집안은 이 중심 씨족이 되는 9개 지파 중에,
4개 지파가 사실상 이 집안의 중심을 이루는데
이 4개 지파에서 거의 대부분의 문과 급제자가 나온다.
그리고 이 4개 지파에서도 인조반정 이후 서인-노론과 맥을 같이 한 혈족들이
사실상 그 각각 지파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같은 지파라고 해도 우리나라 당쟁 와중에 서인 이외의 편에 선 사람들,
예를 들어 남-북인, 소론 쪽에 선 사람들의 후손은
그 후에 제대로 벼슬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중심 씨족 주변에는
거대한 서얼-중인-평민의 바다가 펼쳐진다.
이 4개 지파는 오늘날 그 인구가 지파별로 대략 5-6만 정도를 헤아리는데,
각 지파 별로 문과 급제자가 50-60명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문과급제자 대부분이 이 그 지파에서도 극소수 우족,
다시 말해 서인-노론의 편에 섰던 계열에 집중해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별볼일 없다.
우리나라 모든 문중 족보가 전부 이런 식이다.
부계로 종족을 모아 놓다보니 신분도 다르고 양반이라 해도 당색도 다르다.
그리고 조선 후기로 들어올수록 서인-노론계로 권력이 몰리는 현상이 매우 뚜렷하며
이들이 그 숫자는 적지만 전체 그 지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아주 크다.
따라서 이들 4개지파 구성원들은 전체 10프로도 안되는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나머지 90프로는 자신들이 명문 집안 후예라는 착각 속에 그 "문중"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이 되면 우리나라 대부분 "대동보"는 모두 이런 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집안 명문 집 족보에 이름이 있다고 해서 명문의 후예다?
천만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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