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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은 애초 의학 공부한다고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가 치료할 환자는 중국이라 생각하고 이를 위해선 문예운동 만한 게 없다 해서 작가로 전향한다.
그의 글쓰기가 시종해서 메스 들고 집도하는 의사인 이유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그의 글은 언제나 인습과 구습의 도려내기였다.
썩어문드러진 곳을 외과수술 의사처럼 도려내고자 했다.
노신과 흡사한 길을 걸은 식민지 조선 청년이 있다.
이 양반도 내가 알기로 의사 지망생이었다가 일본 유학 중에 철학사상으로 돌아선다.
귀국하자마자 조선 민족 갱생의 도를 부르짖었다.
그 역시 곳곳에서 집도의를 자임했다.
썩어문드러진 정신을 뜯어고치자고 말했다.
외솔 최현배였다.
그는 투사다.
이 점이 전연 부각하지 않는 점이 나로선 기이할 뿐이다.
오로지 국어학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만 각인할 뿐이다.
국어학에서, 조선어에서, 한글학회의 굴레에서 외솔을 해방해야 한다. (2016. 1. 22)
***
그 시대 저를 배태한 사상은 절대 기반이 배타적 민족주의라, 이 내셔널리즘은 그것이 훗날에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 무자비한 배타로 발전한다.
혹자는 이르기를 언제 노신이, 최현배가 배타적 지배 이데올로기인가 묻는다.
천만에. 이 사회는 여전히 노신과 최현배가 유령처럼 배회한다.
스파르타를 열렬히 숭배한 노신, 한자를 쓸어버려야 한다는 외솔, 한 시대의 선택이 아니라 그건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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