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이 이야기에 덧붙인다.
특히 이는 내가 직업적 학문종사자라 분류할 만한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거니와, 그런 연구자라 해 봐야 몇 명 되지도 않던 시대에나 통용했을 말이
"그건 내가 이미 논문으로 다 썼어."
라는 말이 있거니와, 그런 직업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완성의 궁극을 논문으로 보는 까닭에 저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한다. 저에서 나 역시 예외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무엇보다 연구자라 분류할 만한 숫자가 폭증했고, 또 그 수준이 개발이건 소발이건 너무 그런 글이 많다. 참고문헌 혹은 인용문헌이라고 잔뜩 달지만, 그 많은 참고문헌 인용문헌을 그것을 인용하거나 참고했다는 사람 자체가 다 제대로 소화했는지가 심히 의심스런 시대다.
내가 아무리 좋은 글, 아무리 좋은 논문을 써도, 그거 읽는 사람 생각보다 몇 되지 않는다. 그런 논문을 요새는 자조하기를 필자와 학회 간사, 그리고 심사자 셋만 읽는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갈수록 이 셋조차 제대로 그 글을 읽는지를 의심한다.
간사? 간사가 할 일 없어 그 글을 다 읽겠는가? 제목보고 초록볼 뿐이다. 심사자? 나는 이 심사자가 제대로 읽는지를 의심하거니와, 읽는다 해도 그 대의를 제대로 이해하는지조차 의심한다. 과거 내 논문에 대한 심사평을 보면, 내가 이런 돌대가리한테 내 주옥 같은 글을 심사받아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필자 자신. 이건 자기표절과 밀접한데, 자기 논문을 자기가 안 읽는다. 읽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문제는 이에서 비롯한다.
과거에 자신이 쓴 논문을 자신도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금새 잃어버리기에 무의식적 자기 표절이 자주 일어난다. 이는 나 자신도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쓰고 보면 놀란다. 과거에 내가 한 얘기랑 똑같거나와 비슷해서 말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논문 발표 혹은 그것을 기반으로 삼는 단행본을 정리하건 말건, 끊임없는 2차 가공이 있어야 한다. 지금 시대가 그것을 요구한다. 나는 이를 홍보전략이라고 규정하는데, 내가 쓴 글을 내 스스로가 계속 다른 방식으로 환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내가 쓰는 수법이기도 하고, 또 외우 신동훈 교수 관련 글들을 보면, 과거 그 자신의 연구성과를 다시금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는데, 이런 방식이 모름지기 가장 효율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와 같은 2차 홍보전략, 곧 다른 방식으로 확산하기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본다.
내 글은 논문화 혹은 단행본화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2차 가공을 끊임없이 획책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산다.
바로 이 점에서 sns는 이런 홍보전략에 최적화한 매체요 수단이다.
이런 작업이 내 성과를 선전하는 극대화 전략, 곧 관종의 징표일 수도 있겠지만, 관종이 왜 나쁜가?
이러해야 내가 생각하는 바, 내가 구명했다고 생각하는 바를 좀 더 시민일반사회에 가까이 다가서게 하며 그것이 곧 그 자신을 검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심사자라 해 봐야 셋밖에 되지 않는 논문 게재 관리시스템이 지닌 문제는 한둘이 아니어니와, 그렇다 해서 그 숫자를 마냥 늘린다 해서 좋은가?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 놀음은 저 단계에서 끝내고 일단 공간된 내 논문, 내 단행본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미 공간되는 순간 그 글은 내가 아니라고 하는 시대는 이병도 이기백 시대나 해당할 법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하긴 뭐 이 두 선생만 해도 맨 똑같은 이야기 60년 동안 되풀이하다 가셨더라만, 그러고 보면 맨 똑같은 얘기 그렇게 죽자사자 60년을 되풀이했으니, 이름이나마 남았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이 시대는 논문 게재가 시작일 뿐이다.
#글쓰기 #논문쓰기 #논문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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