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누군가는 제대로 정리를 해야 할 터이고, 아마 이런저런 글이 없지 아니하며,
민속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 근무하다 퇴직한 김삼기 박사를 중심으로 그리했다고 기억하거니와
내가 보고 겪은 일화 한 토막을 현대사 증언 차원에서 적어둔다.
소백산맥 기슭 산골인 내 고향은 그 자락 해발 680미터 비봉산 혹은 문바우산 아래 낙동강 지류가 만든 계곡을 따라 자리하거니와,
그 기슭 바로 아래에는 유서는 깊으나 사세가 몰락할 대로 몰락한 직지사 말사 비구니 사찰 봉곡사가 있고 그 주변으로 아랫새재 웃새재라는 사하촌이 있다.
새재라 했으므로 무주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있지만 이 고갯길을 나는 통과해 본 적 없다.
우리 동네는 이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다시 대략 2~3킬로미터를 지나 이 조룡천이라는 시내는 비교적 규모가 더 큰 낙동강 지류 감천의 줄기 중 하나로 흘러든다.
이 동네를 가례라 하며, 그 사이 좀 더 작은 동네를 덕봉이라 한다.
이 가례천 주변에 지금은 아마 흔적이 남지 않았을 법한데 광산 하나가 있었고, 무엇을 캐내던 광산인지는 모르겠고,
이미 내가 자랄 적에 폐기된 그 광산 안에 들어가 우리는 자주 놀았으니, 그 광산 주변엔 터뜨린 다이너마이트가 나뒹굴었다.
그에는 차돌이 많았으니, 혹 지금 기억하면 차돌 광산 아니었나 싶은데 모르겠다.
닥나무 가마는 바로 그 인근에 있었으니, 두 기인가 운영하지 않았나 기억한다.
닥나무 가마는 물이 생명인데, 그런 까닭에 시냇가에 위치했다.
다시 상류 봉곡사 인근으로 옮겨가 거기엔 큰 인공 연못이 하나 있고 그 바로 아래 친구 아버님이 닥종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닥종이 판로는 어디였는지 내가 알 수는 없다. 물론 지금은 돌아가셨다.
닥종이를 만드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이 기억하는데, 그 만드는 과정이 각종 유튜브에 소개하는 그 영상과 하등 다를 바는 없어 그런 것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이 사하촌 새재 마을에도 닥나무 가마가 있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아마 있었을 법한데, 기억난 김에 이건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암튼 다시 하류로 한참을 내려간 그 닥나무 가마 말이다. 지금은 닥나무를 언제 베어 삶는지 기억에서 사려졌다.
아마 가을 혹은 겨울이 아닐까 하는데 자신은 없다.
닥나무는 보통 밭두렁에 심는다.
논두렁엔 없다. 논두렁에 닥나무를 심으면 나락 농사 망친다.
왜? 해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밭두둑에 심는다.
닥나무는 보통 뽕나무랑 같이 심는다. 그래서 지금도 닥나무랑 뽕나무가 같은 둔덕에서 자라는 장면을 많이 본다.
뽕이나 닥나무는 근간에 서로 통하는데 섬유질이 같이 많다.
뽕나무도 껍질 결대로 좍 벗겨내면 흰 솜털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종이를 만드는 원료다.
물론 그 소출은 닥나무랑 비교가 되지 않아 종이를 만드는 절대의 원훈대신은 닥나무다.
두 나무를 비교하면 뽕은 노란색이 많고, 닥나무는 검은편이다.
이파리 역시 사정이 비슷해서 뽕이 아주 파란 녹색을 이쁘게 낸다면 닥나무 이파리는 어딘가 한대 얻어텨져 생긴 멍자국 같은 그런 빛깔이다.
뽕이 아주 귀할 때는 닥나무 이파리를 누에한테 먹이기도 하는데, 이거 내가 어릴 적에 엄마 아부지 몰래 몇 마리 먹여봤더니 물똥을 좍좍 싸더라.
역시 누에는 뽕이며, 닥나무는 아니더란 말씀.
닥나무는 아마도 잎이 지면서 그걸 아래쪽 줄기 부분을 베어서 다발을 만든 다음 가마로 가져간다.
가마로 가져가서는 푹푹 찌고 삶는데 삶고 나서는 아마 찬물에 담그든가?
암튼 그리하고서는 껍질을 좍좍 벗겨낸다. 그 껍질 일일이 손으로 벗겨내야 한다.
난 이 짓 날더러 하라면 죽어도 다시는 안 한다.
벗거낼 때 아마 깍지를 끼우던가 했을 텐데, 이것도 뭐 하나 못해 인절미라도 얻어걸릴 때 하는 거지 그리 많이 해본 기억은 없다.
한지는 속껍질을 이용한다.
껍데기는 내 기억에 일일이 무엇인가로 훑어서 벗겨냈다.
그 거무틱틱한 껍데기가 섞인 조선시대 한지를 심심찮게 만나는데 이건 노임 떼먹어 그에 대한 복수로 이리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서책 봐라. 그 종이를 살피면 잘만든 건 불순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사가에서 만든 것들은 이런 찌꺼기 천지다.
그렇게 벗겨낸 속껍질을 나중에 펄펄 끓어서 펄프 상태로 만든 다음 그걸 떠서 벌겋게 구운 가마솓 바닥 같은 데다가 잠깐 얹었다가 수분만 증발시키면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닥종이다.
삶고 벗겨낸 닥나무는 쓸모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물론 땔나무로 쓴다.
조조 둘째아들이던가? 조식? 그 친구가 하도 형이 겁박하는 바람에 지은 칠보시가 유명하거니와 가마솥에 콩을 삶는데 콩깍지를 땐다는 말이 있거니와, 닥나무 역시 신세가 비슷해서 닥나무 삶는 가마 땔감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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