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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대동보의 성립과 허구의 완성

by 신동훈 識 202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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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9세기가 넘어서면 대동보의 모습이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보다 빠른 집안도 있지만 

우리나라 족보의 성립은 임란 전후하여 빨라지기 시작하는데 

1800년대가 넘어서면 지금 우리가 보는 족보의 틀이 갖추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세대가 추가되고 슬쩍 슬쩍 끼어드는 집안, 

같은 문중이라는 작은 본관의 합보가 이어져 

일제시대가 되어야 대동보의 성립이 완성되기는 한다. 

대동보의 성립이 끝난다는 것은 족보를 둘러싼 허구가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초기 족보 - 16세기, 17세기 족보-가 

18세기를 거쳐 19세기로 가는 과정에서 보면, 

족보가 체계적으로 출판된 집안의 경우 그 족보의 변천과정을 

시대별로 출간된 족보를 따라 내려오면 쉽게 알 수 있다. 

앞에서도 필자가 이야기했지만 족보를 만드는 중심 씨족이 있고, 

이 중심씨족이 향촌의 사족-선대를 잃어버린-을 일가의 종족으로 족보에 편입하며 

대동보의 초기적 모습을 완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 씨족은 이른바 그 문중의 "유파(파)"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대개 어느 집안이나 대동보를 보면 시조에서 몇 대를 내려오면

몇 대째에 이르러 몇 개 파로 나뉜다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족보가 성립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그 중 대부분은 선계를 잃어버린 종족들이라 

중심되는 씨족의 선계에 적당히 갖다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합보한 씨족들이 모두 그 후손이 맞다고 해도 

각 파로 나뉠 때 이들이 같은 항렬의 형제 친척들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선대의 족보를 따라 올라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전 족보에서는 선대를 찾을 수 없어 별보 처리된 씨족들이 

그 다음 족보에서는 느닷없이 누구 아들로 나오기 때문이다. 

족보를 가지고 우리나라 인구사, 사회사를 연구한다고 할 때, 

호적이 남아 있지 않아 전혀 객관적 검증이 안 되는 경우에는 

19세기 이후의 족보는 연구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이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종족의 합보, 

족보 기록의 날조, 

무관한 씨족의 합류 등 사안이 이미 끝난 시기라

이걸 들고 역사 연구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른바 18세기 이전의 족보를 흔히 그래도 위조의 가능성이 크지 않은 "청보"라 불러 

그 이후 날조에 의해 오염된 "탁보"와 달리보는 경우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청보를 17세기 이전으로 보기도 한다마는, 우리나라 17세기 이전 족보가 많지 않다)

이른바 이 "청보"가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청보"만 골라 내 버리면 이번에는 이 시기 호적이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진퇴양난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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