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단상>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제법 이름있는 이의 필적은 일본에 많이 전해진다. 대개는 일본에 망명한 뒤 생활비를 조달하려고 팔았거나, 신세진 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사한 것이다.
조선-한국에 있었던 인물이 일본인을 만나도 으레 글씨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곤 했던 모양으로, 요즘들어 그러한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1) 금박종이나 호피선지를 둘러 휘황찬란하게 '표구(장황이 아니다)'한 현현거사玄玄居士의 글씨나 소호小湖의 난초를 흔히 만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일본 재료를 써서 만들어 일본인에게 준,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라고 표기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단순히 만든 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미술사의 영역 안에 넣을 수 있는지는 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2) 지금 전해지는 그런 작품들의 수량을 보면 절대 '틈틈이' 한 작업은 아니다.
거의 전업 서화가 수준으로 작품을 생산(?)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그렇게 먹을 갈고 붓을 휘둘렀으면 근육통이나 관절염에 시달렸을 법도 하건만 그랬다는 얘기를 못들어봤다.
류머티즘에 걸린 분도 계셨을텐데...
*** Editor's Note ***
감옥살이 하며 죽음을 기다리던 안중근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는데 면회오는 사람마다 글씨 써준다고 스트레스 받았으리라는 생각 많이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으니 이미 구비할 만한 호조건은 다 갖춘 우리 응칠 형님.
그에게서 글씨 하나 받자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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