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이 없거나 끈 떨어진 권력일수록 총칼에 기대기 마련이다. 마지막 수단이 그것만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정권이 사정 정국으로 간다고 봤다. 하긴 이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시나리오다.
김영란법도 그 취지와는 달리 나는 시행 시점을 의심했다. 레임덕 처한 정권으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한다. 이게 나라인가?
개판이지..
누구 잡아넣었다고 좋아하지 마라. 언제나 냉철해야 하며 언제나 의심해야 하며 언제나 상식과 통념은 뒤집어야 한다. 정권이 의도했든 아니했든 송희영 사건으로 벌써 이래서 김영란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는 점 다들 주목했으면 한다.
너희가 공범일 수도 있다.
참 더러운 세상이다.
(2016. 8. 31)
***
프랑스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이른바 공포정치나 파시즘 나치즘 마오이즘이 대표하는 20세기 독재정치도 다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에 기반한다. 그것이 지금은 꽤나 비판받지만 당대로 돌아가면 대중이 열광하며 동조하고 동참했다.
삼청교육대도 마찬가지였다. 전두환 신군부가 깡패일소를 내걸고 조폭소탕에 나서자 대중은 열광과 갈채로 화답했다.
내가 믿는 신념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목적은 불순해도 목표는 같다는 이유로
갖은 명분과 이유를 포장한 독재가 자라는 독소는 대중의 열광적 지지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나는 대표적으로 담뱃값 인상을 드는데 당시 권력은 국민건강을 운운했다. 이것이 새빨간 거짓이라고 그리도 목청을 높였건만 흡연은 나쁘다는 그 열광과 환호에 묻혀 기어이 담뱃값은 두 배나 올랐다.
국민건강 운운은 헛소리 개소리요 실질은 지자체, 특히 기초자치단체 세수확대였다.
이른바 삥뜯기였다.
4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나는 곳곳에서 독재가 판친다고 본다.
당위의 이름으로
상식의 이름으로
무엇보다 공공의 이름으로
각종 독재가 판친다.
그 독재는 누가 배양하며 누가 지탱하는가?
권력인가?
국민이다.
그런 점에서 독재체제를 지탱하는 힘은 대중이라는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은 옳다. (그의 대중독재론을 이해하기 위한 키는 칼 슈미트가 쥐고 있다. 나는 그리 본다.)
덧붙이건대 박근혜 시절, 독직 혐의를 씌워 박근혜 정권은 당시 권력과 대립각을 세우던 조선일보에다 재갈을 물렸다. 그가 어떤 대기업 접대를 받아서 호화 지중해 해외여행이니를 했다는 내용인데, 이를 두고 많은 시선이 있었거니와, 내가 참말로 묘했던 데는 조선일보를 향해 시종 싸늘한 시선과 멸시를 보내던 자들 반응이다.
그들은 환호했다. 그러면 그렇지 조선일보는 역시 부패했고, 그래서 이 사회 절대악이며, 그런 까닭에 저런 신문은 없어져야 한다는 사람들은 그런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좌로 거론하며 조선일보 처단을 열렬히 환호했다.
독재는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대중과 야합한다.
'ESSAYS & MISCELLAN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광활한 논을 바라보며 (0) | 2020.09.02 |
---|---|
빈쭉정이 천황은 대통령과는 다르다 (0) | 2020.09.01 |
아부로 문을 여는 책 (3) | 2020.08.28 |
외부의 미지에서 와야하는 영웅, 낙하산은 계속되어야 한다 (0) | 2020.08.27 |
전통마을? 스머프마을? (0) | 2020.08.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