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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유명한 일제시대 동인지들.
폐허, 창조, 백조 등등.
이런 동인지들은 통권 10호를 넘지 못했고 창간과 함께 폐간, 2호 내고 폐간도 많았다.
이를 대개는 일제의 탄압으로 쓰고 그것도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더 문제는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고 하겠다.
왜?
조선인 대부분이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근대사상 최초로 대중 판매가 폭발적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그것이 사상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실상의 최초의 잡지였을 "사상계"가 가능해진 이면에는
한국에서 까막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데 그 첫 번째 이유가 있다 하겠다.
사상계가 폭발적 판매고를 올리던 50년대 말이 되면 이미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량 배출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이승만 정부를 타도하고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이승만은 스스로 양산한 고등학생에 의해 쫒겨났다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정희정권과 5공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대학이 배출한 고학력자에 의해 넘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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