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에 환호하는 아이들
[순간포착] 음악으로 문화혁명 일으킨 '서태지와아이들'
송고시간 2020-03-21 08:00
2017년 서태지, 방탄소년단에 "이제 너희들의 시대" 선언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을 기억하는 기점은 군대다. 두어 번 얘기했듯이 이들은 내가 제대해서 복학하고 나서 느닷없이 등장했다는 기억이 또렷하다. 또 말했거니와, 그들이 들고나온 이른바 새로운 음악이 나로서는 너무나 기시감이 대단해서, 무슨 미국 흑인음악 아류인가 했더랬다. 왜인가? 저들이 들고나온 음악....정확한 명칭이 주한미군 한국증강군 the augamentation troops to the unitede states army, 약칭 카투사 KATUSA 출신인 내가 군대시절 지겹도록 들은 그 음악인 까닭이다.
그랬다. 저들이 들고나온 '난 알아요'는 분명 그 아류였다. 한데 더 이상한 일은 그 아류에 대중, 말할 것도 없이 젊은 여식들이었으니 그들이 열광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게 궁금하다. 왜 열광했을까?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멤버 중에서는 가장 어렸지만, 그 절대의 존재기반이었던 서태지가 한창 유명해지고 나서 보인 은둔주의 행보였다. 데뷔 초창기 시절 저들 역시 여느 신인 가수나 마찬자리로 이 방송 저 방송 불러주는대로 남발할 정도로 나왔다. 진심어린 모습인지 연출인지 알 수 없으나, 연신 나 사랑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음으로 양으로 남발하던 서태지가, 그렇게 대중 앞에 다투어 나선 서태지가 어느날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해 버리고, 또 그런 은퇴를 보며 울고불고 하는 여식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고는 의아하기만 했다. 암튼 희한한 모순의 행보를 보인 서태지였다.
은퇴한다는 서태지
이 무렵 또 한 명의 무명 가수가 데뷔해 날 알아주오를 외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아니했으니, 30년이 지나서야 느닷없이 이른바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양준일이었다. 이런 거 보면 세상은 요지경 맞아.
데뷔 이후 한창 잘 나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저들이 '발해를 꿈꾸며'를 들고 다시 나타났는데, 발해를 꿈꾸며? 이건 뭐야? 독도는 우리 땅이야의 새로운 버전? 저들이 그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곳이 훗날 열라 유명해지게 되어,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되거니와, 철원 노동당사였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주름잡은 왕국 발해를 제목에 내세웠으니, 그래서 그 전진기지 혹은 상징의 장소로 저곳을 부러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저들이 애초에 들고나온 랩은 그 본고장이라 할 만한 미국에서 등장해 일세를 풍미하기 시작할 적을 보면 가사 절반이 욕찌거리였다. 욕찌거리를 제도권 대중문화 영역으로 과감히 도입한 것인데, 욕찌거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불만이 크다는 뜻이어니와, 그것을 발명 유통한 계층이 미국사회에서는 차별적 존재의 대명사로 일컫는 흑인이라는 점에서 그 음악은 곧잘 사회 반항이라는 이미지로 포장되곤 했었다.
흔히 서태지 음악을 말할 적에, 이런 점을 집중 부각했다. 사회고발성, 그리고 억눌림의 표출을 말했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나는 본다. 그것이 발해를 표방하고, 야간자율학습이 대표하는 그런 규율과 강압에의 반항을 표방한다고 선전되니, 이런저런 것들이 맞물려 기어이 그는 문화대통령에 등극하게 된다.
나는 저가 거창한 철학이 있거나 문제의식이 있어 저런 음악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그리 해석되고 받아들여진 것이며, 그런 해석이 남발하고, 그렇게 받아들여지자 그들 역시 이 시대 음유시인을 자처하는 행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 하여가 방송분을 보면 내가 더 놀라운 점은 MC 이승연이다. 열라 젊고 이쁘다. 서태지가 그 시절이 있었듯이 이승연도 이승연의 시대가 있었다.
암튼 한 시대를 풍미한 저들도 은퇴 선언과 더불어 멤버들도 짜개져서 서태지야 여전히 저작권료 따박따박 챙기면서 적지 않은 부를 축적했다고 알고 있으니, 몇 년전 그의 저택을 우연히 평창동 답사에서 마주하고는 와! 열라 좋다 부러웠거니와, 이후 풍문으로 듣기로는 이걸 내놨다 어쨌다나 하는 말이 있었던 듯하다. 덧붙여 누구더라? 그가 결혼했었다나? 그의 전처가 느닷없이 등장했는데, 나중에 정우성 애인이 되었다 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이주노는 천상 흑인이고 싶어했다.
최고참 이주노...이 친구가 젤로 안 풀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저런 구설에 계속 휘말리지 아니했나 하거니와, 잘 나가던 그때 돈 좀 모아 그걸로 따박따박 타 먹으면서 여생이나 즐기지 왜 이런저런 신사업 구상한다느니 뭐니 해서 곤혹에 처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양현석....멤버 중 존재감이 젤로 어중간했다고 기억하거니와, 돈을 젤로 많이 버는 일생을 산다. 이수만 본떠서 YG라는 가요기획사 설립해 그렇게 열라 벌어서 지가 거느리는 애들이랑 라스베가스 가서 한방 땡기고 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버닝썬게이트가 촉발한 그 사회분란에 주인공처럼 등장해 지금도 열라 고생하는 중이다.
요새 이러다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집담 감염하기 딱 좋다.
이번주 [순간포착]은 딱 29년전, 이들의 화려한 등장과 그것이 지닌 의미를 짚어봤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3) (0) | 2020.03.23 |
---|---|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2) (1) | 2020.03.22 |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1) (0) | 2020.03.21 |
1970년에 선보인 《모파상전집》 (3) | 2020.03.20 |
100일 천하 호령하다 평생 쪽박찬 유종원 (0) | 2020.03.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