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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도굴꾼이 남기고 간 남원의 대가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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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가야계 무덤서 화살촉·깃발꽂이·칼집 장신구 출토
박상현  / 2021-07-28 09:44:13
항아리에서는 바다서 잡히는 조개·고둥 나와…"무사 계급 추정"

 

 

남원 가야계 무덤서 화살촉·깃발꽂이·칼집 장신구 출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전북 남원 대가야계 무덤떼인 사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의 대형 고분에서 도굴 이후 남은 무기류와 토기가 일부 발견됐다.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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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은 죽은 자가 사는 곳이다. 그가 생전에 사는 곳을 일러 집이라 하거니와, 그가 죽어 사는 집이 무덤이다. 그런 까닭에 생전의 집과 사후의 집은 서로를 투사 投射 projection 하며, 그런 까닭에 일란성쌍둥이다. 무덤을 보면 그 사람의 생전 삶을 유추할 수 있는 까닭에 이 투사에서 말미암는다. 

여기 생전에 투사의 삶을 산 것으로 추정하는 삼국시대 남성 무덤이 있다. 구체로는 5~6세기 무렵, 지금의 경북 고령군에 무게중심을 둔 대가야 왕국에 속했다고 생각되는 인물의 안식처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전북 남원에 소재하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이 일대를 세거지世居地로 삼는 대가야 왕국 지방 유력 권력가 집안 혹은 그런 지역 인사들 공동묘지로 생각하는 곳이다. 남원시 인월면 성내길 23 일원에는 그 시대를 웅병하는 40여 기에 달하는 그 시대 봉토분封土墳이 밀집한다. 

 

고분 분포 양상

 

이 무렵 가야계 무덤은 동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와는 뚜렷이 구별하는 특징이 있으니, 무엇보다 이 친구들은 길쭉이 빼빼로형 지향이라, 봉분 내부에 만드는 매장주체시설이며 부장곽이라 해서 시체를 묻는 곳과 껴묻거리를 집중해서 묻는 곳 지형을 볼짝시면, 길쭉이형이라, 아주 길고 좁은 직사각형 시설을 돌로 쌓서 만든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번에 완주연구소가 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제30호분이라는 무덤 역시 이러해서,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이미 극심한 도굴 피해를 봐서, 매장 직후 모습 전모를 엿보기에는 유물 배치 양상이 많이 헝클어지고 훼손된 상태라는 점이 그것이라

하지만 띨띨한 도굴꾼이라, 공부를 덜 하고 안 해서, 시체를 묻은 매장주체부만 졸라 뒤진 데다가, 아무래도 덮친 시기가 오래전인 듯 그때는 인기가 없었던 유물을 고스란히 현장에 패대기 친 반면, 껴묻거리 공간은 있는 줄도 몰라서 거긴 건딜지도 않았으니, 도굴꾼들이여 제발 공부 좀 하고 현업에 투입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게 뭐냐? 위대한 도굴 역사에 치욕을 남겼노라. 

 

이거 보면 능선 끝난이며 주능선이 아니라 조금 그에서 벗어났음을 본다.

 

암튼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부장곽은 고스란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도굴 흔적이 스치고 지난 매장주체부 쪽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겨 화살촉 다발과 깃발꽂이, 칼집 끝 장신구를 비롯한 제법 쏠쏠한 유물이 수습됐다.

이 무덤은 이미 조사되어 금동신발과 동경銅鏡을 비롯한 중요 유물을 쏟아낸 32호분과 인접하거니와, 현재 남은 봉분이 지름 23∼24m인 제법 큰 규모다. 

2020년 9월 이래 2개월간 실시한 1차 발굴조사에 이어 이번에 2차 조사를 통해 속내를 드러낸 30호분은 우선 그것이 들어선 위치 특징을 보면 산 능선에다가 땅을 다듬고 봉분을 쌓았으니, 북동쪽으로 낮아지는 능선 일부를 깎아내고 편평하게 만든 다음 그 중앙에다가 가로 8.92m, 세로 2.89m, 깊이 2m 정도로 다시 땅을 파서 시체를 묻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을 아마 고고학도들은 묘광墓壙이라 하던가???

그 서쪽 끝단은 ‘∟’자 형태로 한번에서 파서 만들었지만 양쪽 사이드 벽면과 반대편 동쪽 끝난 벽은 한번 더 판 모습이 드러났으니 이는 아마도 관을 내리기 위한 작업공간 아니었을까 조사단은 추정한다.

 

 

매장주체부와 부장곽은 이른바 二자 형 배치라, 둘 모두 동-서 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하되, 부장곽은 그 북쪽에다 마련했다. 틀림없이 시신은 동쪽으로 머리를 뒀을 텐데, 조사단 말을 들으니, 도굴 피해가 심해 그걸 확정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 한다. 

이번에 확인한 흔적을 조금 세분해서 보면 먼저 주곽主槨이라 일컫는 매장주체부라 해서 시체를 묻는 곳이어니와, 이는 봉분 정중앙 지점에 위치한다. 그 덮개돌 기준으로 해발 448m 정도라니, 고원지대는 고원지대인갑다. 제법 한여름에도 한밤중에는 솜이불 덮어야 할 듯한데, 아무리 시체라도 고생 좀 했겠다 싶다. 

장축 방향은 N57°W도 정도라 크게 동서 장축이라 보면 된다. 장축은 안쪽 비름빡 기준으로 가로 6.42m, 세로 0.75m 이며 깊이는 바닥에서 벽석최상부까지 1.76m. 평면비 8.56:1 정도 비율로 앞서 말한 대로 길쭉이 빼빼로형이다.

 

매장주체부. 덮개돌 제거 이전 

 

덮개돌은 가로×세로 200×75cm 정도인 대형 깬돌 14개다. 일부 덮개돌은 묘비석 수준의 가공한 흔적이 보인다. 나는 이 점이 조금은 수상쩍다. 

그 주변으로 대략 6개 정도 도굴 구멍이 확인됐으니, 복령 캐는 수준이었나 보다. 주곽 직상방에 매장주체부 확인을 위한 탐색용 도굴갱 2기, 주곽 양 단벽 방향에는 유물을 빼낸 도굴갱 2기가 드러났다. 이 도굴갱을 메운 흙에서 주곽 벽체를 구성하던 석재와 미처 가져가지 못한 철제 유물, 토기편이 다수 수습되었다. 

 

덮개돌 제거 이후 주곽. 저 상태니 얼마나 도굴선생들이 고생했겠는가?

 

서측 방향에서 이루어진 도굴은 단벽 부근 직상방에 하강을 위한 도굴갱을 설치하여 주곽에 진입한 뒤, 안쪽에서 무덤 단벽 일부를 밀어내고 유물을 빼내기 위한 추가 도굴갱을 설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동측 방향에서 이루어진 도굴은 동단벽 쪽으로 도굴갱을 설치하고 덮개돌을 뜯어내어 도굴갱 구석으로 옮긴 뒤, 주곽에 진입하여 유물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뿐 놈들....

이렇게 도굴갱이 복잡하게 확인되는 원인으로 도굴 이전에 이미 매장주체부가 붕괴된 까닭으로 보인다. 이미 무너진 상태로 범벅이니 에랏 이렇게 재수없는 데가? 했을 성 싶다. 이는 도굴이 이뤄지기는 했어도 그런 대로 유물을 이번에 건지는 성과로 이어졌다. 

비름빡은 대체로 바른층 쌓기를 했으니, 동측 단벽은 대략 13~14단, 서측 단벽은 14~15단 정도가 확인된다. 깬돌과 그렇지 않은 자연 강돌이 뒤섞인 상태다. 아래쪽에 편평하고 큰 돌로 기초를 만들고 이후 일정하지 않은 돌들로 비름빡을 쌓아 올리다가 덮개돌에서 가까운 최상단은 안팎 두 겹으로 마감했다. 

바닥은 작은 강돌로 깔았다. 관을 두던 시상대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그 중앙에서 드러난다. 관에 박은 못들이 일정한 분포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목곽이나 목관을 썼다. 시상대가 있었을 주변으로 부서진 작은 쇠칼과 금장식이 된 초미금구가 확인된다. 이 금구는 본래 위치를 유지한 것으로 생각한다.

 

봉분과 그 내부를 이런 식으로 쌓았다고 

 

토기는 양단부와 도굴갱에서 파편 상태로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부장곽 출토된 토기와 동일한 제작 배경에서 만들어진 개체로 추정된다. 간단히 말해 같은 장인이 같은 가마에서 구웠을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도굴갱에서 사행상철기편 일부가 수습되었다. 

다음 부장곽이다. 매장주체부 동북편에 위치한다. 장축 방향은 매장주체부와 동일한 동서 장축이다. 매장주체부와 수직 분포가 일치하지 않는 점이 특징.

덮개돌 높이를 기준으로 해발 447m 정도에 위치. 장축은 벽체 내벽을 기준으로 길이 3.1m, 너비 0.4m이며 깊이는 바닥에서 벽석최상단까지 0.8m. 평면비 1:7.9 정도 비율. 덮개돌은 100×50cm 정도 깬돌 11개를 활용했다. 매장주체부에 쓴 같은 덮개돌에 견주어 가공 정도가 떨어진다.  

벽석은 하단은 돌을 세워쌓고 그 위로 대략 5단 정도로 허튼층 쌓았다. 벽석은 강돌을 이용하여 한 겹으로 만들었으며 바닥은 풍화암반층을 이용하였다. 

도굴범 손길을 피한 부장곽에서는 대가야계 토기가 다량 수습되었다. 기대器臺와 뚜껑이 있는 호壺가 주종. 기대는 발형鉢形과 통형筒形이 수직으로 적재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철제류나 기타 유기체 등으로 제작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수습한 토기 내부에서 조개 껍데기가 발견되었다. 혹 기생충으로 사망??? 

 

매장주체부 유물출토 양상 

 

출토유물을 좀 더 자세히 본다. 먼저 매장주체부다.

대가야계 토기와 철제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중앙에는 초미금구를 포함하여 관정, 꺽쇠, 철부, 철도편이 도굴갱에서는 철촉과 사행상 철기가 수습되었다.

 

초미금구랑 꺾쇠. 

 

수습된 초미금구는 잔존상황이 불량하지만 금장식과 옻칠 흔적이 확인된다. 주변에서는 도신刀身 조각 여러 점이 수습되었다. 사행상철기는 서단벽에 위치한 도굴갱에서 수습되었다. 사행부와 공부가 별건 제작되어 결합하는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철모는 2점으로 무너진 벽석 사이에서 수습되었다. 철모의 모신은 길며 무관형에 가까운 형태로, 공부 말단부는 직기형으로 보인다. 

철촉은 대부분 서단벽의 도굴갱과 시상석 상면에서 수습되었다. 유존상황이 불량하여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인접한 32호분과 같이 다발로 부장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촉신에 역자가 대칭적으로 확인되는 개체가 많은 편이다.

철부는 단조철부로 추정되며 북단벽 바닥에서 2점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환형철기, 용도미상철기도 출토되었으며 꺾쇠와 관정은 시상석 상면과 양장벽에 인접하여 출토되었다.

양단벽의 도굴갱에서는 경부에 밀집파상문이 시문된 유개장경호와 개신부가 편평하고 중산모자형 꼭지를 갖는 뚜껑편이 수습되었다. 

 

부장곽 덮개돌 제거한 상태 



다음 부장곽 유물 양상이다. 

토기만 확인된다. 그것들은 장축 방향과 동일하게 2열로 배치된 모습. 북쪽에는 유개단경호와 유개장경호 등의 호류가, 남쪽으로는 발형기대와 같은 대형 토기가 배치되었다. 유개단경호와 유개장경호 일부는 통형기대에 얹혀있는 상태로 노출되었다. 

발형기대는 대형과 소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형은 발부가 낮으며 밀집파상문이 시문되어 있다. 대각은 직선에 가깝게 떨어지는 형태이며 밀집파상문이 시문되어있다. 투창은 삼각형으로 상하단이 교차 혹은 직렬로 배치된 형태이다. 소형 발형기대 발부는 대형 기대와 유사하지만 문양은 시문되지 않았다. 대각은 직선적인 형태로 돌대에 따라 2단으로 구획되며 상단에만 삼각형 투창 또는 투공이 뚫려있다. 

 

부장곽 내부 조사 중 

 

유개장경호는 경부가 외반하는 형태로 돌대를 통해 4단으로 구획되며 각 단에는 밀집파상문이 시문되어 있다. 동최대경은 중상위에 위치하고 저부는 원저에 가깝다. 

통형기대는 기고가 낮으며 수부는 밖으로 급격하게 외반하는 형태이다. 대각은 돌대로 2단으로 구획되며, 상단에만 삼각형 투창이 배치되었다. 

유개단경호와 유개양이부단경호는 경부가 외반하며, 동체부 외면에 격자타날을 하였다. 동최대경은 중상위에 위치하며 저부는 평저이다. 유개양이부단경호는 파수부가 대칭적으로 부착된다.

 

부장곽 홀라당 깐 상태 
부장곽 출토 토기 일괄. 모양 봤지? 명기明器 흔적 완연하자나? 저걸 살아있는 사람이 사용? hell no!!!

 

뚜껑은 꼭지가 중산모자형과 단추형이며. 개신부는 대체로 편평한 형태이다. 일부 짚흔이 개신부 상면에 남아있고 문양은 점열문과 무문이 확인된다. 드림턱이 없는 개체가 많은 편이다. 결합하는 본체와는 별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단경호에서 피뿔고둥과 우럭조개가 확인되었다. 

 

항아리 내부 조개. 혹 죽은 사람이 어부? 갯벌맨? 

 

기타 주곽과 부곽 말고 풍화암반층에 퇴적된 황갈색 점질토층, 적황색 점질토층에서는 연질토기와 곡옥 등이 수습되었다. 연질토기는 적갈색 심발형토기와 적갈색과 회백색 호 구연, (우각형)파수가 있으며 외면에는 격자문과 승문타날이 확인된다. 

곡옥은 1점이 수습되었다. 크기는 약 2㎝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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