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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도봉산(道峯山) 역사문화 탐방기

by 서현99 2021.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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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道峯山) 역사문화 탐방기]
 
 평상시에도 서울에 오면 집 뒤에 있는 북한산에 자주 올랐는데, 2년 전 추석에 올랐던 북한산 백운대가 인상적이어서 이번 설날에는 도봉산(道峯山)을 택했다.
 
2019/09/13 - [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 한가위 북한산 백운대
 
도봉산은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과 인접해 있는 까닭에 북한산국립공원의 도봉산지구에 속해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자운봉(紫雲峰)으로 높이 739.5m이며, 산행금지 구역이라 옆에 있는 신선대까지만 등반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명산(名山)이라고 알고 있는 산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듯 생각되나, 이는 명산의 인문지리적 중요성이 역사적 층위와 만나 다양한 문화유적이 생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봉산(道峯山) 역시 북한산(北漢山)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명산(名山)인 까닭에, 오늘의 산행기는 도봉산 역사문화 탐방기쯤 되겠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지구 입구 표지석과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도봉산 신선대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시(詩)나 기(記)로 남겼는데, 서거정(徐居正)[1420~1488],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 이항복(李恒福)[1556~1618], 권상하(權尙夏)[1641~1721], 박세당(朴世堂)[1629~1703], 이행(李荇)[1478~1534], 이민구(李敏求)[1589~1670], 이경석(李景奭)[1595~1671], 김득신(金得臣)[1604~1684] 등이 대표적이다.
 
그 중 이항복과 서거정의 한시를 옮겨본다.

 
이항복, 「추일유도봉산(秋日遊道峯山)」
 
경측고사옹(逕側孤槎擁)[길은 외로운 뗏목이 막힌 데서 기울고]
 
계회소동음(溪廻小洞陰)[시내는 작은 골짝 음지로 돌아 흐르네]
 
풍감산기부(楓酣山氣富)[단풍 짙으니 산기운이 풍부하고]
 
등암수성심(藤暗水聲深)[등덩굴 침침하니 물소리가 깊구나]
 
득의시망어(得意時忘語)[뜻을 얻으면 때로 말하길 잊고]
 
회인역폐음(懷人亦廢吟)[사람을 생각하면 읊는 것도 폐하네]
 
청류완어락(淸流玩魚樂)[맑은 물에 고기 구경하기 즐거우니]
 
지리재무심(至理在無心)[지극한 이치는 무심한 데 있다오]

 
서거정, 「도봉산 영국사(道峯山靈國寺)」
 
산하하년불찰개(山下何年佛刹開)[산 아래다 어느 해에 불찰을 열었던고]
 
객래종일족배회(客來終日足徘徊)[길손이 와서 온종일 배회할 만하구려]
 
개창운기배첨입(開窓雲氣排簷入)[창을 여니 구름 기운은 처마를 밀쳐 들오고]
 
의침계성권지래(欹枕溪聲捲地來)[베개 베니 시내 소리는 땅을 말아서 오누나]
 
고탑유층공백립(古塔有層空白立)[층층의 옛 탑은 부질없이 하얗게 서 있고]
 
단비무자반청퇴(斷碑無字半靑堆)[글자 없는 조각난 비는 풀에 반쯤 묻혔네]
 
잔년진기인간사(殘年盡棄人間事)[내 여생엔 인간의 일을 모조리 버리고]
 
결사향산의불회(結社香山擬不回)[향산에 결사하여 돌아가지 않으련다]
 


 
본격적으로 오늘의 산행기를 시작하면,

먼저 도봉산 탐방로 초입에서 도봉동문(道峯洞門) 암각문을 만날 수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글씨로, 도봉서원의 전당에 들어섬을 알려주고, 도봉산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암 송시열이 쓴 도봉동문(道峯洞門) 암각문, 송시열은 도봉서원에서 유학을 강론했다.

 
암각문을 지나서 약 10분정도 더 오르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김수영(金洙暎)[1921~1968] 시비(詩碑)를 만난다.

시비에는 김수영의 대표적인 시 <풀>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왜 김수영의 시비가 있는지 찾아보니, 도봉산에 그의 묘소가 있고, 선영과 본가, 집필실이 도봉동에 있었던 까닭에 시비를 세웠다고 한다.

2013년에는 도봉구 방학동에 김수영 문학관을 개관했다고 한다.
 

서울미래유산 표석, 2013년 등록된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 시비, 그의 대표적인 시 &lt;풀&gt;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김수영 시비 바로 위에 휀스가 둘러쳐진 곳은 도봉서원터로 알려진 곳이다.

도봉서원은 조광조를 모셨던 서원으로 1696년에는 송시열을 추가 배향하였다고 한다.

일하고 상관없이 갔지만 조광조를 배향한 서원인 용인 심곡서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도봉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최근에는 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고려시대 영국사라는 절터 위에 서원을 세웠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부지가 황량한 것을 보니 아직까지 어떤 방향으로 정비복원할지 정해지지 못했나보다.
 

[2017. 7. 3일자 기사 -불교 유물 쏟아진 도봉서원…'儒佛 상생형' 복원 가닥]

https://www.yna.co.kr/view/AKR20170629172100004?input=1195m

도봉서원터이자 영국사터인 이곳에 대한 복원정비 방향이 과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도봉서원터에 대한 안내문

 
40여 분을 더 오르니 사찰 일주문이 보인다.

천축사(天竺寺)는 도봉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고 전하는데, 고려 때에는 영국사의 산내 암자였다가, 태조 이성계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에서 관음 기도도량으로 영험한 곳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천축사 일주문과 안내판

 
이제부터는 정상을 향해 쭉- 치고 오르는 코스. 잠깐 마당바위에서 숨을 고르고 나니, 수직에 가까운 신선대까지 오르는 약 800m 길이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선대로 오르는 마지막 난코스, 여기까지 왔을 때는 이미 다리가 후덜덜했음 ㅠㅠ

터질 듯한 다리통증을 이겨내고 오른 신선대. 오늘 날씨가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탓에 서울이 잘 내려다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신선대 서쪽방향 - 북한산 방면
신선대 동남쪽 방향 - 수락산 방면
신선대 북쪽방향 - 송추 장흥 방면

 
하산 이후 도봉산 근처를 지나다가 다시 마주한 신선대 뒤로 음력 설날의 해지는 모습을 보며,

명절맞이 산행기 끝.

도봉산 뒤로 음력 설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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