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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의(陶宗儀)와《설부(說郛)》

by Herodopedia taeshik.kim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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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말(元末)~명초(明初)를 살다간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총서(叢書) 이름이다. 도합 100권 거질이며 이에 수록된 조목(條目)은 수만을 헤아린다. 진한(秦漢) 이후 송원(宋元)에 이르기까지 제가(諸家)의 작품을 초록했으니, 그 포괄 범위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각종 필기(筆記)․시화(詩話)․문론(文論) 등을 망라한다. 역대 사가(私家)가 편집한 총서로는 비교적 크다. 그것이 포괄한 내용은 삼라만상이라 경사전기(經史傳記)․각종 잡서(雜書)․고고박물(考古博物)․산천풍토(山川風土)․충어초목(蟲魚草木)․시사평론(詩詞評論)․고문기자(古文奇字)․기문괴사(奇聞怪事)․문복성상(問蔔星象) 등이다. 양유정(楊維楨)은 그 序에서 이르기를 “배우는 자가 이 책을 얻으면 들은 바를 열게 되고 본 바를 넓히게 되는 이가 많을 것이다”(學者得是書, 開所聞擴所見者多矣)고 했다.


서명(書名)은 양자(揚子)의 말, 즉, “天地는 만물의 郭(성곽의 일종)이요, 五經은 衆說의 郛(역시 성곽의 일종)이다”(天地, 萬物郭也, 五經, 衆說郛也)에서 유래한다. 그러니 《說郛》는 곧 오경중설(五經衆說)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아래는 오래도록 사본(寫本) 형태로 전하던 설부를 1927년 장종상(張宗祥)이 명대 사본 6종을 교정(校訂)한 결과물인 《명초본설부(明鈔本說郛)》 총 100권을 내면서 부친 서문이다.


《說郛》序


《說郛》 一百卷은 明 陶宗儀 纂이다. 今世 通行本은 爲 一百二十卷이니, 乃 淸 順治 丁亥 姚安 陶珽 編次이다. 其中 錯誤는 指가 不勝屈이니, 如컨대 《四庫目錄》 所載이다. 《春秋緯》 九種之後에 別로써 出 一 《春秋緯》하고, 《靑瑣高議》之外에 別로써 出一 《珩璜新論》하며;周密之 《武林舊事》는 分題 九部이며, 段成式 《酉陽雜俎》는 別立 三名하며, 陳世崇之 《隨隱筆記》는 詭標 二目이라. 又하여 王逵의 《蠡海集》은 其人이 於 宗儀하여 爲 後輩이며, 《雜事秘辛》出楊愼而其書並列集中. 各條는 已미 足히 證明 非 南村原本하니, 而揉雜竄亂之는 可笑矣하다. 乾嘉의 前輩들은 往往 歎息하여 於《說郛》之亡에 대해 하니, 亡於剞劂, 豈 不諒哉! 

    

自 民國 八年 冬하여, 主 京師 圖書館事하여, 得見 館中 殘本 明抄《說郛》했다. 持校 刊本하니, 則 《雲穀雜記》 一種 刊本 亦시 標 三名이니:一標 《雲穀雜記》이며, 一은 以《壽山艮嶽》하며, 一條 標하기를 《艮嶽記》이라 하니, 一則以聯句所始等二十五條別爲《東齋記事》而雲宋許觀撰. 杜撰 書名, 僞標 作者는 則 其他 更何 足言이리오? 由是發願, 欲還南村之舊.

    

然非明抄本則不足據, 明抄又不可多覯. 既遇之矣, 又皆非全帙, 且錯簡脫文, 不一而足. 私心以爲必無望矣. 然遇明抄, 則缺者必借鈔, 重者必借校. 閱今六年, 竟成全書. 其中字句, 不敢臆改, 非據善本, 則必以抄本校抄本, 擇其善者而從之. 今已竣事, 敢舉其大者, 以告世之同好者. 《事始》․《續事始》, 世無傳本, 一善也. (此二種舉其大者, 其餘小者甚多.)《雲穀雜記》雖非全本, 然較武英殿本已多二十餘條. 《意林》世所傳皆五卷本, 此書所收爲六卷本. 二善也. 《老學菴續筆記》有目無書久矣, 《四庫》各閣皆無, 此獨有之, 三善也. 至於各子, 佳字尤多. 

    

旣還南村之舊, 奚敢秘爲己物? 爰付剞劂, 用補先輩之憾雲. 海寧張宗祥記.


저자 도종의(陶宗儀. 1321~1407)는 字가 구성(九成)이요, 號는 남촌(南村)이며 절강(浙江) 대주(臺州) 황암(黃岩) 사람이다. 먼 조상은 東晉시대 저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이라 한다. 아버지 도욱(陶煜)은 字가 명원(明元)이요 號는 소오산인(逍嶴山人)이다.


도종의는 영리(榮利)를 탐하지 않아 청빈하게 살았으며 오직 저술하는 일로써 즐거움을 삼았다 한다. 그의 평생 저서는 10여部 수백 卷에 이른다. 《철경록(輟耕錄)》과 《서사회요(書史會要)》를 제외하고도 《說郛》․《남촌시집(南村詩集)》․《국풍존경(國風尊經)》․《사거비유(四書備遺)》․《고당류원(古唐類苑)》․《초망사승(草莽私乘)》․《유지속편(遊志續編)》․《고각총초(古刻叢鈔)》․《원대액정기(元代掖庭記)》․《금단밀어(金丹密語)》․《창랑탁가(滄浪棹歌)》․《순화첨고(淳化帖考)》 등이 있다. 陶宗儀는 臺州 출신으로는 가장 많은 저작이 《四庫全書》에 수록된 작가다.


도종의는 《說郛》를 완성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病卒하니, 그 抄本dkl 송강(松江) 문사 몇 군데에 수장되었다. 7년 뒤 官居湖廣副使․六十五歲的鬱文博罷官歸松江, 在龔某家借《說郛》細閱, 覺得“是書搜集萬事萬物, 備載無遺, 有益後人.” 但又發覺抄錄者馬虎了草, 字多訛缺, 於是每日端坐“萬卷樓”, 逐一校勘, 費時近十年, 重新編成100卷. 可見陶宗儀原書工程之巨大.

    

명말청초(明末淸初)에 운남(雲南)의 姚安 사람인 도정(陶珽) 또한 《說郛》를 증보하여 120권을 만들었다. 도정은 自署黃岩이니, 宗儀의 원손이다.


1914년, 장종상(張宗祥)이 北京 敎育部 視學을 맡아 開始接觸古籍;1919年, 敎育部長傅增湘請張籌辦京師圖書館, 並兼主任, 時魯迅亦在敎育部任職, 對張宗祥說, 館中藏有明代《說郛》120卷抄本, 要他抄錄出來供大家研究. 從此, “鐵如意館主”張宗祥走上古籍校勘之路, 先後費時6年.

    

商務印書館張元濟得到消息, 向張宗祥要去抄校本, 以“涵芬樓”爲名, 於1927年11月出版, 初版很快售完, 連英國牛津大學也訂購兩套.

     

1990年8月, 上海古籍出版社據將陶宗儀․陶珽120卷本和《續說郛》46卷本, 彙集影印出版, 定名《說郛》三種, 這是中國當代出版最大的從書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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