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상, <에혼 타이코기>를 베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한국인으로서는 7년 전쟁을 이끈 왜구 두목 이상의 평가를 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이 보기에 도요토미는 오다 노부나가(1534-1582),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와 더불어 전국시대 삼걸三傑로 꼽히는 무장이자 흙수저 성공신화를 이룬 경세가다.
그 인기는 도요토미 정권을 끝낸 에도 바쿠후 시절에도 식지 않았다. 바쿠후는 도요토미와 관련된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만, 그럼에도 일본 서민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여전했다.
때는 분세이 6년(1823), 후루시마(古島邑)라는 곳에 요시다 아무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제법 글자를 알았던 그는 어느 날 소설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무쳤다. 하지만 소설을 살 돈은 없었던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어디서 소설을 빌려와서 베껴 읽자! 그가 택한 소설은 <에혼 타이코기繪本太閤記>. 18세기 말에 도요토미의 일대기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낸 대장편소설인데, 무려 84책에 달한다.
그 중에서 4편의 1~4권을 베껴놓았다. 글씨를 상당히 잘 썼는데, 행정관료 아니면 상인이나 의원 아니었을까 싶다.
근데 우리의 요시다상은 그림재주는 없었던지, 그림이 생명인 에혼繪本에서 그림을 몽땅 빼버렸다. 그래서 이 필사본은 이름만 '에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중략' 또는 '하략'을 시켜버렸는데, 아마 베끼다가 종이가 모자랄 조짐을 보이자 자기가 재밌어보이는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빼버린 게 아닐까 싶다.
이런 건 19세기 조선의 세책貰冊과도 비교할 만 하지 않을까? 하여간 퍽 재미있는 자료를 보게 되어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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