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 초기 족보는 처가와 딸까지 다 상세히 적지만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 이런 풍조가 사라지고 가부장적 권위가 관철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이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초기 족보는 부계를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처가, 외가, 딸에 사위까지 족보에 올리므로
족보를 만든 집안에 수준이 맞는 이들만 족보에 올라가게 된다.
쉽게 말해 신분이 떨어지는 집안은 이런 족보에는 거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단 말이다.
따라서 초기 족보라 할 문화유씨 가정보, 안동권씨 성화보 등에는 서자의 이름이 없다.
레벨이 안되므로 올리지를 않은 것이다.
반면에 임란 이후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는 어떤일이 벌어지느냐.
같은 부계 뿌리에서 나온 후손이라고 해도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어서,
소위 명문 족보라고 해도 구해서 읽어보면 정말 잘나가는 종족 외에
서자 후손, 별볼일 없는 망족의 후예까지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들어 온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초기 족보의 제작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 정보만 모아 꾸리면 되니
일종의 신사록이나 귀족 명부 같은 기분으로 만들었을 망정,
임란 이후의 소위 부계족보란 별의 별 신분의 사람들이 다 들어오다 보니
생판 모르는 남남까지 다 족보에 써줘야 하니 이 과정에서 분란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셈이다.
서자, 그리고 몰락한 집안의 후손들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전기의 초기 족보 시스템에서는 족보에 이름을 한글자도 올리기 힘든다.
하지만 임란 이후 부계족보가 되면 비록 서자라고 이마빡에 써 붙이거나
아니면 적자보다 순서가 뒤로 갈 망정,
아무튼 족보에 이름 석자 올리고 흔적이나마 남길수 있게 된것은
임란이후의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 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그 명문 집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평생 살아가며 얼굴도 한번 보기 힘든
산골 동네 퇴락한 집 후손이나 서자까지 다 챙겨서 족보에 실어야 했으니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주관이 되어 만들기는 만들지만
족보 만드는 일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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