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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대동보는 어떻게 팽창하는가: 어느 집안의 경우 (2)

by 신동훈 識 202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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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이야기를 계속 써본다. 

그러면 이 문중의 족보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사실 이 집안의 첫 족보가 나간 뒤

우리도 이 집안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사족 집단들이 계속 쇄도했다. 

이 시점이 17세기이다. 

앞에서 증손 11 분으로 계보를 만들었고, 

또 선계를 모르는 다른 지역의 종족 한 집안이 별보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 다음 족보에는 이미 알려진 증손 11 분의 아버지 대, 

다시 말해 그 손자 일곱분 중 한 분으로 부터 갈려나갔다고 주장하는 

두 종족이 새롭게 합보를 요청해왔다. 

이 경우는 앞의 종족과 달리 명확히 갈려나간 조상의 이름을 특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었지만, 

문제는 옛 족보와 각종 문헌을 보면 그 할아버지는 아들을 한명만 두었을 뿐, 

그 들의 주장대로 아들이 원래 있던 아들 집안 포함 세 집이라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들 모두 지방의 사족으로 어쨌건 사족을 대 놓고 무시할 수는 없으니

18세기의 족보에는 그 사정을 써두고 역시 별보 처리하게 된다. 

별보란 족보의 가장 뒤에 따로 칸을 만들어 그들의 주장과 족보 편수자의 의견을 써두고 족보에 싣는 것이다. 

물론 이 별보는 다음 족보가 편찬되는 두세대, 혹은 세 새대 후의 시점이 되면

모두 해소되어 원래 족보의 어딘가에 누군가의 후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는 확실한 후손으로 부터 세대를 역산하여 

이에 해당하는 조상의 후손으로 연결시키게 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동보에서 처럼 명확하고 분명한 계보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원래의 족보에서 합보 처리된 이들이 18세기, 19세기로 진행하면서

점점 늘어간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필자가 언급한 이 집안은 그래도 어느정도 엄정함을 가지고 사족의 합보를 준비했다고 할수 있는데

이런 과정이 없는 경우에는 후손이 무분별하게 팽창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합보과정을 통해서 가장 격렬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족보란 이렇게 질서정연한 건축물 처럼 보이지만 그 성립과정을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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