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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열柳宗悅, 양심적 일본인과 오리엔탈리스트, 그 극단으로서의 야나기 무네요시

by taeshik.kim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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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5 05:55:01
엠바고 1차 : 2005.05.05 05:55:01

<'양심적 일본인'과 '오리엔탈리스트'의 극단>
야나기 무네요시 불교미학 4부작 완역 돌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대한민국 정부는 1984년 9월에 이 사람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훈장을 수여한 이가 한두 명에  그치겠는가? 하지만 이 사람만은 이채롭다할 만했다.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그 한자 표기는 류종열(柳宗悅). 한국사람이나 중국인이 아닌가 착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엄연히 그는 일본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본인에게 왜 한국정부는 훈장까지 수여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국을 사랑하고 이해한 소위 '양심 있는 일본인'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야나기는 이런 명성을 얻었는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왼쪽)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 야나기는 조선막사발을 들고 있고, 아사카와는 인도인 싱이라는 사람과 조선 청화백자를 사이에 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통틀어 민예(民藝)나 공예(工藝) 분야를 예술 영역으로 탈바꿈시킨 원훈으로 평가된다. 아무도 특별하게 보지 않던  생활용품들은 야나기가 등장하고 난 뒤에 비로소 예술품 반열에 올랐다.

일본 민예 운동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그는 특히 조선에 매료됐다. 조선을  극찬했다. 조선이야말로 동양 민예의 총화로 간주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는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인 식민통치에도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이 점은 분명 그는 동시대 대다수 일본인과 생각을 달리한다. 이런 면모는 지금도 분명히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죽은 지 20년이 더 지난  그의 묘소에다가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1990년대 이후 야나기의 제국주의적 단면이  대대적으로 부각됐다. 특히 에드워드 사이드에게서 감화 받은 제국주의나 민족주의 담론 연구자들에게 야나기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물론 야나기는 동양인이므로 그가 오리엔탈리스트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하지만 그런 동양사회에서 야나기는 일본이 문명적 우위에 있는 강건한 남성적인 존재로 설정한 데 비해 식민지배에 억압당하는 조선은 가녀린 여성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한국의 미를 슬픔이나 한으로 규정하곤 했는데 그 뿌리는 알고 보면  이 야나기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유래한다. 거기에서 깊이 감화 받은 함석헌과 조선의 미술품을 극상(極上)으로 평가한 그를 숭모해 마지 않던 미술사학자들을 거쳐  우리에게 이식된 한국(인)관이 야나기와 상통한다.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부각되는 바람에 야나기의 저작 중 조선을 '칭송'한  작품들로 평가되는 것들은 대부분 국내에 번역 소개돼 있다. '조선과 그 예술'(지식산업사. 1974)를 필두로 '공예문화'(신구문화사. 1993), '조선을 생각한다'(학고재 1994)가 그런 류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출판 이학사가 기획한 야나기 불교미학 4부작 완역 출간  사업은 그동안 그의 조선 예술 예찬론에만 치우쳤으며, 그에 대한 반성이나  반동으로 최근 연이어 터져나오는 그의 오리엔탈리즘적 측면 부각이란 우리 학계의 쏠림 현상을 근본부터 반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

불교미학 4부작이란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미의 법문'(최재목ㆍ기정희 옮김)을 비롯해 '무유호추의 원' '미의 정토' '법과 미'를 가리킨다. 이들 책에서  야나기는 예술이 서양중심으로 해명되는 것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강렬한 동양적 자존의식을 드러낸다.

한 마디로 동양은 서구와 구별되는 그 나름의 미학이 있다는 것이며, 그 표상으로서 불교미학을 내세운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서양미술이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천재 중심으로 전개된 자력적인 미학이라면, 동양예술은 미의 영역을 민중까지 확산한 타력적인 미학이라고 간주한다. 즉, 대승불교를 서구와 구별되는 미학의 주체로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압도적인 서구 근대화 문명의 세례에서 그에 맞서고, 때로는  그것을  능가하는 동양적 주체를 발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도 같은 짓누름을 뚫고서 야나기는  불교미학에서 서양을 타파할 수 있는 서광을 비로소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야나기가 이런 동양적 주체를 '발명'해야 했던 그 시대로 돌아가 야나기를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단재 신채호가 한편에서는 조선적 전통을 원시적 미개적 야만적이라고 그토록 비판하면서도 압도적인 서구의 문명을 이길 수 있는 원천을 다른 곳이 아닌 조선적 전통에서 찾아야 했던 것과 같은 궤선에서 야나기를 '이해'할  필요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251쪽. 1만2천원.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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