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막말과 메이지 시기를 볼 때
반제국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쓰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에도시대의 발전은 눈부신 바 있지만
조선과 일본의 사회적 수준의 격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걸 굉장히 컸다고 보는 데서
막말과 메이지시대를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을 합리화해주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본 제국주의는 막말 메이지시대에 이미 제국주의가 아니라
얘들이 제국주의를 완성한 시기는 이보다 한참 늦은 20세기 초반이나 되야 간신히 비스무리한 모습을 만든다 이 말이다.
실상은 이러했던 것을
일본은 19세기 후반 한국과 접촉하던 당시
제국주의가 이미 완성된 열강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니
양국의 관계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
에도시대에서 막말, 메이지시대는
단순히 남의 나라 역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시대 후기, 구한말, 대한제국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숙지하고 파고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에도시대는 제대로 연구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되어 있지 않고
막말 메이지시대는 이미 일본이 이미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으니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필자가 최근 연재한 막말인물전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메이지유신과 실제의 모습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 쓴 것이다.
제국주의라는 겉옷과 사무라이, 일본의 국학 등등의 분식을 지우고 나면
이 시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때야 제대로 보일 것이다.
메이지유신은 당시 일본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던 하층 무사들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이라면 이건 역시 동학운동으로 상징되는 격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동학운동이 메이지유신처럼 근대화로 이어지지 못했는가,
아마 독자들은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짐작하는 바로 그 부분이
이 문제에 있어 해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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