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이 갖은 간난 겪으면서 지금의 중앙아시아로 다 떨어진 부절 하나 지참하고 기어서 가다시피 해서 10년을 서역을 떠돌아다닌 일을 최초의 서역 교통로 개통이라고 사가들은 대서특필했지만,
장건이 막상 가서 본 것은 중국 상품이 그쪽 시장에 이미 팔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10년 걸려 그렇게 개척하고자 한 길을 이미 그 이전에 장사치들은 뚫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군인이, 외교관이 못 가는 길은 상인이 내는 법이다.
지구는 언제나 뚫려 국경을 뚫었다. 돈은 집요해서 둑을 무너뜨리는 쥐구멍 같았다.
돈이 된다면 장사치들은 알래스카 가서도 냉장고를 팔고(물론 이 말은 알래스카를 모르는 시대에 나온 말이다. 알래스카에도 냉장고는 있어야 한다.) 대동강 물도 팔았다.
그 구멍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였다. 그 복수도 언제나 둘이 아니라 연밥을 뚫은 연씨 같아서 한번 뚫린 구멍은 곳곳에 무수한 아류를 만들었다.
한반도와 외부 세계는 장건 시대 중국대륙과 서역과는 또 달라서, 어느 시점에 두 지점을 연결하는 고리가 뚫린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이미 활짝 뚫려 있었다.
한데 허구한 날 왜 한국 역사학과 고고학은 맨날맨날 낙랑 타령인가?
낙랑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그 위치가 한반도냐 요동이냐 요서냐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한반도가 외부로 교통하는 모든 창구로 모조리 낙랑으로 집어넣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109~108년 한 무제에 의한 위만조선 멸망과 그에 따른 낙랑군을 필두하는 이른바 한사군漢四郡 설치를 실제 이상으로 과대포장하고는 그 이후 전개되는 역사도 그렇고, 그 이전 모든 역사도 저 한 군데다 쑤셔박고선
그 이전 역사는 낙랑군 설치를 위한 음모였고, 그 이후 역사는 모조리 낙랑군에 의한다는 이 낙랑주의, 낙랑낭만주의, 이 낙랑만능주의야말로 퇴출해야 할 괴물이다.
물론 이런 진단 처단에 저에 종사하는 자들이 매양 하는 말이 그렇지 않다 강변한다.
언제 우리가 낙랑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느냐 반문한다.
안 그래?
웃기는 소리들 좀 작작해라.
뭐 외래계 문물만 나왔다고만 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낙랑 팔아먹잖아? 아니야? 뭐가 아니야?
말로는 낙랑을 상대화한다 하지만, 그릇 변화조차 낙랑 영향 운운하며 운위하는 놈들이 너희다.
무슨 낙랑 영향을 받아서 토기가 변해? 그렇다는 증거 있어?
재야? 강단?
내 보기엔 피장파장 똥끼나밑끼나다.
강단?
내가 보건대 너희는 제대로 얻어터지지를 않아서 문제다.
얻어터져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얻어터지지 못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2016년 4월 7일 글을 보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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