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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무장읍성 비격진천뢰 발굴 뒷담화 한 단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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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의뢰로 무장읍성을 연차 발굴 중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이 올해 조사에서 비격진천뢰를 수습했다는 소식은 대략 한달 전쯤 접했으니, 당시엔 한두 점이었다. 그 무렵에는 좋은 것 찾았다. 언론 한 번 타겠다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비격진천뢰는 그 이름이 유명한 까닭에 더러 실물이 있을 법했지만, 고작 6점밖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익히 보도된 대로, 2점만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을 뿐, 그나마 파편 형태였던 까닭이다. 





그러다가 사정이 일변한 것은 대략 보름전쯤이었다. 비격진천뢰가 무더기로 쏟아진 것이다. 그것이 단편으로 몇 점 수습된 인근 수혈 유구에서 무더기로 쏟아진 것이다. 그 사진을 보고는 첨엔 공룡알인 줄 알았다. 이젠 사정이 일변했다. 나는 현장을 비록 떠났지만 그래도 기자다. 기왕 좋은 발굴성과 그에 걸맞는 대접이 있어야 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만나 말했다. "누님, 고창 다녀와야겠소. 가서 후횐 안할 거요. 관련 자료 등등은 내가 준비시킬 테니, 청장 되셨는데 현장 가서 폼 좀 잡으시고, 현장 격려도 하시고, 무엇보다 지금 문화재청과 지자체간 사이가 썩 좋지는 않은데, 이번 기회에 그런 관계도 개선할 기회이니 꼭 다녀와야겠소." 


이 과정에서 곡절이 좀 있었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에도 보고되지 않은 정보를 청장이 던지면서, 고창에서 이런 것이 나왔으니 내려가겠다 했으니, 뭐 기분이야 좋을 리가 있겠는가? 내가 발굴제도과에는 조금 미안하면서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말 못할 곡절도 없지는 않다. 그건 훗날 기회가 되면 말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당탕당 한 바탕 난리를 피우고는 결국 어제 현장 공개가 있었고, 그 자리에 문화재청장이 참석했다. 정재숙 청장으로서는 사실상 첫 발굴 현장 방문이었다. 




그 사이 이렇게 노출한 비격진천뢰를 두고 막판까지 확인 작업을 거쳤으니, 조사단에서는 내부 CT 촬영인가를 통해 그 가능성을 한층 높인 한편, 그와 관련한 방대한 자료 수집에 들어갔으니, 이 고된 작업을 수행한 이가 실은 기호철 선생이었다. 기 선생은 비격진천뢰에 관련한 자료들을 쏵 조사해서 그것을 정리했다. 기호철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성정과 그 방대한 조사 능력을 익히 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이 포탄이 비격진천뢰임을 확신하는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오늘은 훗날 기억을 되살리는 고리를 삼고자 이 얘기만 간단히 해 둔다.  


첨부사진 두 장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 둔다. 이 사진은 호남문화재연구원이 촬영한 것인데, 현장 공개 당일, 연구원에서 배포한 사진이 도저히 현장감이 나지 않아 내가 쪽샘지구 발굴현장 오세윤 작가 사진을 보내주면서, 이런 식으로 인간미 나는 사진으로 대체하라 해서 당일 급하게 조사단이 찍은 것이다. 고로 이 사진 저작권 절반은 김태식한테 귀속한다!!!!!! 


비격진천뢰



***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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