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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문화재 현장의 '원형'과 '상고주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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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내가 부쩍 쓰는 말이다. 내가 한 켠 몸담은 이 업계, 문화재계 말이다. 거의 고질에 가까운 병폐가 있으니, 뿌리깊은 상고주의가 그것이다. 그래 나 역시 그에 한때 포로가 됐고, 그 탈출을 부르짖는 지금도 그것을 못내 떨치지 못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내가 볼수록 이 상고주의 병폐는 심각해, 나는 이것을 에둘러 원형(아키타입, archetype) 고수주의라는 말로 바꿔어 시종해서 비판하곤 한다. 

 

원형...이건 굳이 전공으로 나누자면, 건축사와 고고학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인데, 실은 건축사만 아니라 각 부문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위력을 발휘한다. 

 

한양도성 남산도서관 근방 구간.

 

지금 우리가 문화재가 부르는 것들, 유·무형을 막론하고 이 업계 투신한 자들 뇌리에는 언제나 원형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원형...엄밀히 학문적 의미에서는 이 원형은 없다. 아키타입을 구축하는 과정을 재구再構한다 번역하곤 하는데, 그것은 각종 법칙이라는 이름으로써 만들어낸 이러했을 것이라는 상상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아키타입이라는 말이 실은 언어학에서 쓰임이 광범위한데, 구미 역사언어학(historical linguistics), 특히 그 뿌리를 거슬러 인도유러피언이라는 어족군에 속하는 각종 언어군 단어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 표를 붙인 단어 하나를 상정하는데 이것이 해당 단어의 아키타입이다.

 

영어 to bear는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이나 새끼를 낳는다는 뜻의 이 단어를 찾아 구미언어학은 산스크리트어까지 치고 올라간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이 단어의 조어(祖語), 아키타입 형태로 beareth인지 뭔지를 재구했다는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원형은 후대 각 언어로 갈라 퍼지기 전, 그 뿌리가 되는 조어祖語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그 조어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여러 갈래로 나뉜 후대 그 후손 단어들의 공통 조상이라 해서, 상상을 통해(물론 각종 법칙을 동원한다) 구축한 허상이다. 이것이 통용하는 까닭은 그것이 있어야 설명이 쉽기 때문이다.

 

땜질의 한양도성

 

 

이 원형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있다. 물론 이것도 근자 유전학이 침입하면서 dna가 발견되고, 미토콘드리아가 발명되면서, 적어도 인류에 관한한 그 미토콘드리아 중에서도 모계를 통해 99.9% 유전한다는 m미토콘드리아인가 이것을 통한 뿌리찾기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도 사실이다.

 

알프스 얼음덩이 밑에서 발견된 외치라는 5천년전 초기청동기시대 사람...이 사람 dna 분석을 통해 그 후속을 추적하는 놀라운 시대를 우리는 산다.

 

이러한 뿌리 찾기 과정이 우리 문화재 현장에서는 언제나 원형 찾기로 치환함을 본다. 이는 무형 쪽에서도 실로 광범위한데, 종묘제례악은 툭하면 원형 훼손논란이 휘말리는 현상이 그 대표적 보기다. 

 

다시금 말하지만 원형은 없다!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한양도성을 보자. 

 

이 도성은 기록에 의하면 1396년 태조 이성계 시대에 처음으로 쌓은 이래 그 큰 보수 내력을 보더라도 세종, 숙종, 순조 연간에 대대적인 증개축이 있었다. 그것을 간단히 정리컨대, 태조 초축 때는 막돌쌓기요, 세종 4년 재축에는 이른바 옥수수알 모양 마름돌 쌓기를 했다가, 숙종 이후에는 규격화한 돌을 쓰기 시작해, 숙종 때는 45*45 정방형, 영조 이후에는 60*60 정방형, 순조 이후에는 60-70 정방형 돌을 사용했다. 

 

뿐인가? 이후에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간단없는 개보수가 진행됐다. 간단히 말해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한양도성은 무수한 땜질의 총합이다. 

 

땜질

 

 

한데 우리 문화재 현장에 통용하는 상고주의, 혹은 그에 기반한 원형은 오직 이성계 시대 초축만을 말한다. 이것이 원형이라 주장한다. 나머지 우수마발은 그 원형의 변형 혹은 변질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재 현장에 통용하는 원형이다. 

 

그렇다면 이성계 시대 초축만이 원형인가? 개보수 내력으로 보면 그 이후 세종 숙종 순조 연간의 그 내력 역시 원형이다. 원형이 있다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한양도성은 그 무수한 땜질의 누층적인 합집합이다. 저런 무수한 층위에서 과연 어디를 근거로 원형을 설정한다는 말인가? 한양도성이 더욱 의미 있는 까닭은 이성계 시대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도성으로서의 역사, 권능, 기능을 유지한 내력의 총합이다. 그런 까닭에 그 개보수 모두가 지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그것들이 이룩한 교향곡이 바로 한양도성인 것이다. 

 

저에서 후대 개보수는 원형의 변형이라 해서 잡아 뜯어내야 하는가? 실제 각종 문화재현장에서 이 꼴이 광범위하게 자행된다. 원형 고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는 폭거다. 

 

문경 고모산성 주성벽과 보축

 

다른 성곽을 보자. 우리는 흔히 신라성곽 백제성곽 고구려 성곽 고려 성곽이니 이런 말을 쓰는데 그 시대 한정된 시기만 쓰고 폐기되었다면 그런 명명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겠지만, 대부분의 성곽에서 저 말은 얼토당토 않다. 그것을 처음 쌓은 시기가 삼국시대일지언정 그 이후에 무수히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저 말은 틀리다. 

 

한데 이런 성곽은 한양도성과 마찬가지로 파보면, 특히 산성의 경우 예외없이 보축補築이 확인된다. 중심 성벽을 안팎으로 보호하기 위해 덧대어 쌓은 부분이다. 이 보축도 애매한 대목이 있다. 애초 성을 처음 쌓을 때 만든 보축이 있는가 하면 후대에 성벽이 흘러내림이나 붕괴를 막고자 덧댄 경우도 있다. 

 

우리 문화재 현장에 통용하는 원형이라는 말을 성곽에 대입하면, 초축 당시 주축 성벽만을 말한다. 기타 우수마발은 원형을 훼손하거나 변형을 가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서 조심할 대목은 보축이 없으면 성벽은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원형 역시 마찬가지라, 원형이 있을리도 없지만, 설혹 있다 해도, 원형만을 고수하면 그 원형이 무너지고 만다. 문화재 현장에서 원형이 퇴출되어야 하는 단적인 보기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나는 도대체 어찌하여 원형을 들고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대체 누가 밑도끝도 없는 원형을 잣대로 들이대었는가 말이다.  

 

원형에 집착하는 문화재 상고주의 박멸을 위해서는 모든 문화재 현장에서 출발 시점을 현재를 잡아야 한다.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그것이 온축蘊蓄이다. 문화재는 켜켜한 과거의 현재적인 온축이다. 

 

***

 

원형 archetype 은 머릿속에서 그려낸 환영일 뿐이다. 원형은 욕망이 빚어낸 상상이다. 고로 문화재 현장에서 원형은 없다.

처음의 모습과 원형을 혼동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런 원형을 면면히 이었다는 전통 역시 성립할 수 없다. 전통은 없다. (February 23, 2015)   

 

***

 

이런 점에서 일찌감치 원형이라는 괴물을 버리고 전형典形을 채택한 무형문화재가 얼마나 앞서 나갔는지, 이 문화재 혁명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무형문화재도 없는 원형을 버리고 전형으로 가기는 했지만, 그것이 제대로 정착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왜? 원형을 축출해 버리고 전형으로 가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일선 문화재 행정을 하는 사람도 그렇고, 그 직전 단계에서 개입하는 문화재위원회는 결코 원형주의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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