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은사'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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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토미 라소다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LA에서 날아든다. 1927년 9월 22일 펜실베이니아 노링스타운 태생이니 미국식 관념으로 93세니 장수했다. 스포츠 감독이란 직업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이고,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계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LA Dodgers에서만 1976년 이래 1996년까지 만 20년을 감독으로 장기집권했다.
선수로서는 물론이요, 감독으로서도 최고 영예는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맛봤는가 아닌가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 20년 장기집권 기간 그는 1981년과 1988년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미국 야구의 전설이다.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한국인한테 가장 친숙한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박찬호에서 비롯한다. 공주고를 졸업하고 한양대에 적을 둔 그를 MLB로 끌어들인 이가 바로 라소다다. 당시 박찬호는 강속구가 주특기인 전도유명한 투수였지만, 그런 투수한테 항용 따르는 제구력 문제가 컸으니, 요새 시쳇말로 채 가공되지 않은 원석과 같았다.
그런 그를 끌어들인 라소다 혹은 다저스 경영진 생각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LA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계 이주민이 많은 지역 특색도 고려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시장 개척이라는 목적도 분명히 있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구단이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 노모 히데오도 영입했다는 점에서 그 마케팅 전략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박찬호와 노모는 같은 시대 같은 LA 공기를 호흡하며 강력한 동양인 투수 원투펀치를 형성했다.
이 시절 박찬호 활약도 두드러졌지만, 많은 MLB 시청자한테 노모 히데오의 토네이도 투구폼도 강렬히 각인한다. 다만 라소다로서는 아쉬운 점이 이들 걸출한 동양인 투수 둘이 동시활약할 그 시대에는 월드시리즈를 거머쥐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박찬호가 미국야구에 정착하기 시작하던 1996년 라소다는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때도 이미 메이저리그 감독으로서는 아마 최고령이 아니었던가 싶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다저스 구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항용 이런 감독들은 감독에 물러나더라도 고문이니 이사니 하는 이름으로 보드진에 그대로 남거니와, 선수나 감독 영입에 계속 입김을 행사하기 마련이라, 라소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영국 프리미어축구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얼마전 타계한 보비 찰튼이나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알렉스 퍼거슨 사계를 보면 비교가 된다.
박찬호가 발판이 되었지만, 그런 발판을 마련한 라소다. 그를 통해 야구인들한테는 꿈의 무대로 일컫는 메이저리그는 한층 더 한국인 심성에 뇌리를 박게 되었고, 이후 추신수니 류현진이니 하는 친구들이 메이저리그를 밟는 물꼬를 본격으로 튼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단순히 메이저리그 전설이 아니요 한국야구에도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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