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편집국 문화부 쪽에 가니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 해서 내어놓은 신간이라, 저자 약력 살피니 이른바 정통 고전 그리스 철학 전공자라,
제목 그대로 호메로스 일리아스 풀어쓰기, 해설을 시도했으니, 그 얼개를 이루는 사건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이런저런 전문가적 해설을 곁들였다.
서문도 그렇고 본문도 그러한데, 이 그리스 고전을 시종일관 우리가 어려워한다고 하면서, 특히나 무수히 남발하는 그리스 신 이름이며 그 권능이며, 나아가 그 시대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요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저쪽을 정통으로 공부했으니,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한테 주는 훈육 같은 그런 느낌이 나를 시종일관 불편하게 한다.
간단히 말해 일리아스 번역이 아닌 저 책은 해설서다. 주석이다.
대략 기원전 700년 어간에 완성됐을 저런 텍스트를 번역을 통해 접해야 하는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거니와, 그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저자 의도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저자가 잊은 점이 있다. 내 세대에는 저런 해설이 통용할지 모르나 내 아들 세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언제인가 아들놈이 고등학교 때인가? 아니면 중학교 시절인가 터키로 패키지 꾸러미에 끼어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으니, 이런 패키지여행에는 으레 가이드가 붙는지라,
이 가이드가 갖은 지식 동원하며 가는 곳마다 이런저런 설명을 마이크 대고 열심해 했으니, 그때마다 아들놈은 피식피식 웃었다.
혼자서 중얼중얼대는 말을 엿들어 보니, 틀린 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번은 마이크 뺏어 내가 설명하고 싶다 하더라. 내 아들만 그런가? 그 세대는 다 그렇다는 점을 저자도 잊고 있다.
이 여행에서 또 하나 놀란 점은 명색이 문화재로 반평생을 먹고 살았다는 나는 도대체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설명문도 보지 않고 척척 맞춘다는 사실이었다.
이 놈은 그리스 로마 조각만 보고도 대뜸 그가 누구인지 척척 알아맞혔다. 특히 그 무수한 그리스 로마신들을 척척 맞췄다.
너 대체 어케 그걸 아느냐 되물으니 "아부지는 것도 몰라?" 하는 게 아닌가. 마누라는 한 술 더 떠서 하는 말이 "애가 어릴 때부터 맨날 보는 책이 그리스 로마신환데 그걸 몰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세대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끼고 자랐고, 공룡은 저보다 더 잘 안다. 그런 세대다. 나랑은 완전히 세대가 다르다.
나야 그리스 로마신화라 해 봐야, 하도 깡촌이라 그림 책 하나 구할 수 없었고, 것도 그나마 대학에 진학해서야 일리아드 오딧세이를 번역으로 겨우 읽었으니 말이다.
시대가 다르다. 내 아들놈도 그렇고 저 세대는 박혁거세 고주몽보다 아마테라스노오호미카미가 더 친숙하다.
저들은 모를 것이라는 전제 혹은 출발 자체가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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