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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백제 금동신발을 출토한 고창 봉덕리고분

by taeshik.kim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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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cient Tombs at Bongdeok-ri Village in Gochang date back to the heyday of Morobiri, which was once the center of one of the fifty-four statelet of the loosely organized Mahan confederacy.

Two of the four tombs have been collectively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 531 in recognition of their good state of preservation.

The tombs have rectangular burial mounds with flat tops. They were built by cutting into the slope and digging a ditch around the site.




This method of building tombs was first identified in the former territory of the Mahan.

No. 1 of the two tombs is 72 meters long, 50 meters wide and 7 meters high, making it the largest of all the ancient tombs discovered in the Mahan area.

Tomb No. 1 is called a "beehive tomb" for it consists of a vast number of burial facilities, including five stone chambers and two earthenware coffins.

A pair of well-preserved, exquisitely made gilt-bronze shoes was found in one of the burial chambers; and celadon wares from China and objects that look like Sueki ceramics from Japan have also been unearthed from the tomb.




Judging by the method of construction and the relics unearthed from the tombs, historians believe that their occupants wer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of Morobiri.

Further research on the tombs is expected to shed light on the relationships between Mahan and Baekje, China, and Japan around the fifth century.

 

 

산이 평야지대로 흘러내리면서 그 끝자락에 형성한 자연 구릉을 절단해 무덤으로 이용한 특이한 사례로는 국내 처음으로 확인된 전북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고분군 중 1-2호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발굴조사 결과 이런 축조방식이 드러났다. 1-2호분 일대 지형도는 이와 같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2009.1.2



고창지역은 마한 54개 소국 중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의 중심이었으며,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마한 모로비리국의 고분으로 총 4기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1, 2호분만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동서방향으로 긴 장방형이고 정상부는 평탄하다. 고분의 형태는 자연 구릉의 경사지를 깎은 후 그 위에 무덤방을 만들고 다시 흙을 쌓았으며, 고분 주변에는 도랑[주구周溝]을 만들었다. 특히 대규모 자연 구릉을 깎아 축조하는 방식은 마한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독특한 사례이다.

 

봉덕리고분 



발굴조사 결과, 1호분은 장축 72m, 단축 50m, 높이 7m 정도로, 지금까지 발굴된 마한고분 중 최대 규모이다. 1호분은 석실 5기와 옹관 2기 등 다수의 매장시설이 조성된 형태로, 이른바 “벌집형 고분”으로 불리운다. 특히 1호분의 4호 석실에서는 화려하게 만들어진 금동신발이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으며, 이와 함께 중국제 청자와 일본 고분시대 스에끼 계통의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창 봉덕리 고분군의 축조양상과 출토유물로 볼 때, 고창지역의 중심세력이었던 마한 모로비리국의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5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마한과 백제와의 관계 및 중국, 일본 등과의 활발한 국제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https://youtu.be/7SE73-EKRRY

 

이상은 현지 문화재 안내판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성이 적지 않다. 이 안내판은 시종일관해서 이 무덤이 마한 무덤임을 강조하지만, 그렇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 무덤이 들어선 5세기에 마한이 정치체로서 존재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마한은 이미 이 시대에는 형해화해서 상징으로서만 존재했을 뿐이다. 더구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운운은 넌센스일 뿐이다. 조사자 의견이 지나치게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산이 평야지대로 흘러내리면서 그 끝자락에 형성한 자연 구릉을 절단해 만든 전북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고분군 중 1-2호분 중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조사한 1호분. 횡혈식 석실분을 비롯한 매장주체시설이 5군데 확인됐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2009.1.2

 

저에 견주어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제공하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이에서는 분명히 이곳이 백제무덤임을 못박았다. 비록 마한 분묘 전통을 계승했다는 수식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봉덕리고분 1호분 중 3호 횡혈식석실 내부

 

사적 제531호 고창 봉덕리 고분군 高敞鳳德里古墳群 
수량/면적 5필지 14,281㎡
지정(등록)일 2015.09.24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산 47
시대 : 마한 분묘 전통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5세기 전후의 백제시대 무덤임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고창군 

 

봉덕리고분 1호분 3호석실 내부 출토 토기류

 

ㅇ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총 4기의 분구묘(墳丘墓)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고분은 발굴조사가 완료된 1호분과 정밀지표조사, 정밀실측이 이루어진 2호분이다. 서로 맞닿아 있는 1호분과 2호분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육안으로도 그 형태가 뚜렷이 확인된다. 특히, 동서 70m, 남북 52m, 최고 높이 9m에 달하는 1호분은 전북 지역 최대 규모의 분구묘로 꼽힌다.
* 분구묘(墳丘墓): 미리 흙이나 돌을 이용하여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하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무덤양식

 

봉덕리고분 1호분 제4호 석실분 바닥면. 금동신발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했다. 



ㅇ 일반적으로 분구묘는 평지 또는 구릉 위에 조성되나, 봉덕리 고분군은 자연구릉의 경사지를 깎아 땅을 고른 후 방대형(方臺形, 네모진 평면에 윗면이 평평한 형태)으로 기본 형태를 조성하고, 그 위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흙으로 봉분을 쌓았다. 그리고 1호분과 2호분의 경계지점은 대규모 자연구릉을 굴착하여 조성하였다. 이러한 고분 축조방법은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마한‧백제지역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적이 없는 매우 독특한 사례이다.

 

봉덕리고분 1호분 4호 석실 출토 백제금동신발



ㅇ 발굴조사 당시 1호분의 분구 내에서는 석실·옹관·석곽 등 다양한 매장시설이 확인되어 영산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마한 분구묘의 전통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고분으로 평가된다. 특히, 4호 석실에서는 화려함이 돋보이는 금동 신발과 함께 중국제청자반구호(中國製靑磁盤口壺),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봉덕리 고분군의 축조세력이 당시 고창지역의 최상위 계층임을 알 수 있다. 
* 중국제청자반구호(中國製靑磁盤口壺) : 중국제 청자로 된 주둥이가 접시처럼 생긴 항아리
*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 : 작은 항아리로 장식된 구멍 뚫린 입 넓은 항아리

 

봉덕리 1호분 제4호 석실 출토된 중국제 청자(왼편)와 장식유공광구호(오른쪽).



ㅇ 따라서, 묘제(墓制)의 양상과 출토 유물 등으로 판단할 때 고창 봉덕리 고분군은 5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백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는 물론, 당시 중국·왜 등과의 대외 교류를 포함한 국제관계를 살펴볼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1호분 3호 석실 출토 중국제 청자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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