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쯤 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삽자루 들고는 갓빠 같은 우의 걸치고 논으로 행차했으니, 물을 보고는 물꼬를 텄고 도랑을 팠으니, 물이 넘쳐 나락을 망칠까 해서였다. 그땐 이렇다 할 의미가 없는 장면이었으나, 갈수록 그 장면이 오버랩한다.(김태식)
한시, 계절의 노래(62)
저물녘 논밭 사이를 거닐며 두 수(暮行田間二首) 중 첫째
송(宋) 양만리(楊萬里) / 김영문 選譯評
뻐꾸기 울음 속에
해님 발길 거둘 때
지팡이가 나를 불러
서쪽 논둑 가보게 하네
진주 이슬 푸른 벼 잎에
도르르 구르다가
잎 끝까지 가지 않고
머물러 쉬려 하네
布穀聲中日脚收, 瘦藤叫我看西疇. 露珠走上靑秧葉, 不到梢頭便肯休.
뻐꾸기를 중국에서는 ‘布穀(포곡·bugu뿌꾸)’라고 한다. 우리와 같은 소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수(日脚收)’란 표현이 흥미롭다. 해님도 발이 달려 하루 종일 열심히 달리는데 이제 산 너머로 돌아가야 하므로 발길을 거둔다는 의미다. ‘수(收)’도 중국에서 아직 흔히 쓰는 표현이다. 시골 마을에서 저녁 어스름에 돌아오는 농부를 보고 “收工了?(shou gong le?)”라고 인사한다. “일 마쳤어요?”라는 뜻이다. 둘째 구 묘사도 재미 있다. ‘수등(瘦藤)’은 등나무를 말려서 만들었다. 산신령이 짚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지팡이다. 그 산신령 지팡이가 나를 불러 해지는 서쪽 들녘으로 나가보게 했다고 표현했다. 기실 자신의 들뜬 산보 욕망을 슬쩍 지팡이에 원인을 돌리고 있다. 마지막 두 구절은 어떤가? 비스듬히 비치는 저녁 햇살 속, 푸른 벼 잎에 맺힌 이슬은 떨어질 듯 말 듯 반짝반짝 빛난다. 아름답고 세밀한 표현이다.(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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