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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삼국지와 위략 (2)

by 초야잠필 202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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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진수의 삼국지 원문은 다음과 같다. 

侯准既僭號稱王,爲燕亡人衛滿所攻奪,(후侯인 준准이 이미 참람하게도 王이라 일컫다가 연燕나라 망명인인 위만衛滿한테 공파되었다.) 

여기다가 배송지는 아래와 같은 주를 붙여놨다. 

《魏略》曰:昔箕子之後朝鮮侯,見周衰,燕自尊爲王,欲東略地,朝鮮侯亦自稱爲王,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其大夫禮諫之,乃止。使禮西說燕,燕止之,不攻。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爲界,朝鮮遂弱。及秦並天下,使蒙恬築長城,到遼東。時朝鮮王否立,畏秦襲之,略服屬秦,不肯朝會。否死,其子准立。二十餘年而陳、項起,天下亂,燕、齊、趙民愁苦,稍稍亡往准,准乃置之於西方。及漢以盧綰爲燕王,朝鮮與燕界於浿水。及綰反,入匈奴,燕人衛滿亡命,爲胡服,東度浿水,詣准降,說准求居西界,(故)中國亡命爲朝鮮籓屏。准信寵之,拜爲博士,賜以圭,封之百里,令守西邊。滿誘亡黨,衆稍多,乃詐遣人告准,言漢兵十道至,求入宿衛,遂還攻准。准與滿戰,不敵也。(위략魏略에 이르기를 옛날 기자후손인 조선후朝鮮侯가 주 왕실이 쇠퇴함을 보고서는 연燕이 스스로 높여 王이라 하면서 동쪽 땅을 넘보려 하니 조선후朝鮮侯 역시 자칭 王이라 하면서 군사를 일으켜 燕을 정벌함으로써 주 왕실을 높이고자 했다。그 대부大夫인 례禮가 그를 간하여 그치게 했다。그러고서는 禮를 사신으로 서쪽 연나라에 보내어 설득하니, 연나라 또한 공략 방침을 멈추었다。후에 자손이 점차 포악해지니 연燕이 장수 진개秦開를 보내어 그 서쪽 지방을 공략하니 차지한 땅이 2천여 리였으니 만번한滿番汗을 경계로 삼으니 조선이 마침내 쇠약해졌다。진이 천하를 통일하자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으면서 요동遼東에 이르렀다。이때 조선왕 비否가 섰는데 秦이 그들을 습격할까 두려워 하며 略服屬秦하면서도 끝내 직접 조회하지는 않았다。비가 죽자 그 아들 准이 섰다。20여년이 흘러 진승과 항우가 일어나고 天下가 소란스러워지고 燕、齊、趙 백성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점점 준准한테로 망명하니 准이 이에 그들을 西方에다 안치했다。及한漢이 盧綰을 연왕燕王으로 삼자 조선은 燕과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노관이 반란하여 흉노匈奴로 들어가자 연인燕人 위만이 망명하여 胡服을 걸치고 동으로 浿水를 건너 准에게 항복하며 조알하며 准을 설득하여 西界에 살게 해달라 하니 이에 中國 亡命인들이 朝鮮의 번병籓屏이 되었다。准이 위만을 신뢰하고 총애하여 博士로 제수하고는 圭를 주고 百里 땅을 주어 제후를 삼아 西邊을 지키게 했다。위만이 망명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니 사람들이 불어나자 이에 거짓으로 사람을 보내어 准한테 고하기를 漢兵이 十道로 이르니 들어가서 숙위宿衛하겠다 하고는 마침내 도리어 칼끝을 겨누어 准을 공경하니 准이 위만을 대적했지만 막지 못했다。) 

고조선 변천과 관련한 유명한 사료다. 그런데 앞에 진수 글은 간단한데 비해 위략은 엄청 자세하여 꼭 진수의 원문에 배송지가 설명을 붙여 놓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 두 문장, 삼국지와 위략은 같은 때 서로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던 문장이란 말이다. 

아래도 마찬가지다. 

 

진수 삼국지 원문: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그 좌위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가 한 땅에 살면서 한왕이라 칭했다)

 

배송지 주: 

《魏略》曰: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氏。准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위략에 이르기를 그 아들과 친척으로 그 나라에 남은 이들은 한씨라 칭하고, 준왕은 바다로 들어가서 조선과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꼭 앞에 진수의 문장을 받아 배송지가 주를 붙여 놓은것 같지 않나? 

하지만 실상은 이 두 문장은 거의 비슷한 때 쓰여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뭐 학계에서 이미 다 알던 거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 

 

 

*** Editor's Note ***

 

지금까지는 흔히 쿠데타를 일으킨 위만한테 왕검성에서 내쫓긴 준왕이 좌우를 거느리고 바다로 도망갔다가 韓 땅으로 상륙해 그곳에서 왕 노릇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에 대한 배송주 주가 인용한 위략을 보면 

그게 아니라, 준왕은 바다로 도망가서, 韓에 속한 어느 섬을 점거하며 한왕韓王이라 칭했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준왕이 도망쳐 와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 곳은 육지가 아니라 서해안 어느 섬임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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