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역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지 오래되었는데, 출간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분량이 워낙 방대하여 출판사에서 출간 작업과 일정 결정에 애를 먹는 듯합니다.
올해 안에 [위지魏志] 부분이라도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배송지주]와 관련된 정보를 몇 차례 올려드리겠습니다.
* 진수陳壽의 삼국지 편찬
서진西晉의 진수陳壽(233~297)는 위나라 관찬官撰 위서魏書(王沈)와 사찬私撰 위략魏略(魚豢)을 바탕으로 정사 삼국지 위서魏書를 편찬했고, 오나라 관찬 오서吳書(韋昭)를 바탕으로 삼국지 오서를 편찬했다.
그러나 촉한은 사관史官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관찬 사서史書가 없었다.
따라서 진수 자신이 촉한에 있을 때 보고 들은 견문과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삼국지 촉서蜀書를 썼다.
이 때문에 위서는 30권, 오서는 20권인데 비해 촉서는 15권에 불과하다.
전체 분량을 살펴봐도 촉서는 전체 삼국지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량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진수는 삼국 분열의 역사를 삼국지라는 하나의 총서로 빠짐없이 갖춰놓음으로써, 삼국지가 당시 역사 이해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사료로 기능하게 했다.
* 삼국지 편찬 시기
진수가 정확하게 언제 삼국지를 완성했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삼국 중에서 위나라가 진晉나라에 의해 멸망한 해가 280년이고 진수가 사망한 해가 297년이므로 이 사이에 삼국지 편찬을 마무리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좀 더 좁혀보면 진서晉書 진수전陳壽傳에 당시 하후담夏侯湛이 진수의 삼국지를 읽고 자신이 지은 위서魏書를 폐기했다는 기록이 있고,
하후담은 진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 음력 5월 임진일(291년 6월 23일)에 사망했으므로 진수의 삼국지 완성 시기는 280~291년 사이가 된다.
그런데 진서 진수전의 문맥에 의하면 장화張華가 다시 진수를 추천하여 중서랑으로 삼으려 한 일이 삼국지 편찬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보이는데 순욱荀勖이 이를 반대했으며,
또 두예杜預가 진수를 황문시랑과 산기상시로 추천하고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로 임명하게 한 일도 진수의 삼국지 편찬 업적을 인정한 일로 보이므로
이들이 사망한 해를 살펴보면 진수의 삼국지 완성 시기를 더욱 좁힐 수 있을 듯하다.
즉 순욱은 289년에 사망했고, 두예는 285년에 사망했으므로 삼국지 편찬이 완료된 시기는 280~285년 무렵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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