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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서원지의 부정확성, 필암서원의 경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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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의 《동춘당집》 권16에는 〈장성(長城) 필암서원(筆巖書院)을 옮겨 세우는 고유문 -이 서원은 하서(河西) 김 선생(金先生)을 모셨다.-〉이 실려있다. 그 내용을  보면


"원우(院宇)의 지세(地勢)가 좋지 못하므로 오래전부터 옮겨 세우기를 논의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년 여름 장마에 크게 파손되었기에 상의한 결과 모두 동의하였으므로 추산(秋山) 아래에 있는 중등촌(重登村)으로 옮겨 세우고자 하여, 감히 그 사유를 고합니다"


라는 짤막한 내용이다.


이 기록과 기왕의  《필암서원지》 기록을 종합하면 기산리-증산-중등촌-현위치인 해타리(海村)로 옮긴 것을 알 수 있다.
첨부한 지도에서 보듯 중등촌은 지금의 중동 마을이다.

 

 

몇해 전 나는 심곡서원 역시 관련 기록을 통해 중창 연도 등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었는데, 필암서원 역시 기록을 통해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참고-


현 필암서원이 있는 마을 이름은 해타리이다. 일흔 넘은 노인들은 해타리라고 부른다. 이재 황윤석은  《이재난고》 에 친절하게 '해타리[海村]'라고 적어두었다.  《필암서원지》 에는 해타리(海打里)로 되어 있다. 


《필암서원지》  沿革
宣祖二十三年庚寅[주:距先生歿三十一年(一五九○)]湖南章甫建祠俎豆於府西十里岐山下[주:今長城邑岐山里距本院數帿地門人壺巖卞成溫往來奇孝諫錦江齋共折書邀邊望菴以中創建]

三十年丁酉爲兵燹所燬, 仁祖甲子[주:一六二四]復設甑山下[주:今筆巖里甑山洞秋潭金友伋撰上梁文]


孝宗九年戊戌[주:一六五八]本道儒生等疏請賜額翌年己亥蒙允


顯宗三年壬寅[주:一六六二]宣額筆巖書院[주:巖在先生古里麥洞洞口如筆削立額之命名以此面刻筆巖二字屛溪尹鳳九書]因遣
官致祭于本院特命復戶三結


十三年壬子[주:三月二十七日(一六七二)]患水圮且取形勝移建于海打里[주:今黃龍面筆巖里也府使宋時燾與章甫
李實之朴升華金重胤金汝鐄奇挺然朴泰華潘世英金泰夏朴弘一金誠國等協贊督役院貌畢備松巖奇挺翼撰上梁文]


英祖二十年甲子[주:一七四四]改修廓然樓[주:院任金天民邊宗大宋碩福等]不數年火

二十八年壬申[주:三月二十日(一七五二)]重建廓然樓[주:金敬緝金樂祖金天根等○櫟泉宋明欽撰上梁文苕泉金時粲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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