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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누차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조선후기
인구 전체에서 노비와 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라 본다.
필자가 보기엔 거의 90프로 가까운 인구가 노비와 서자에 포함될 것이라 보는데
이는 18세기까지도 각종 호적의 기록,
그리고 서자의 숫자에 대한 당대 인물들의 증언에서 여실히 알 수 있는 바다.
앞에도 썼지만 우리 집안은 명문 사족,
우리는 양반집안 출신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도
태반은 서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서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내내 한 번만 서자가 중간에 조상 중에 끼면
그 집안은 서출이 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양반으로서 퇴락하여 몰락한 것이 아니라,
몰락할 수밖에 없는 조건, 다시말해 조상 중에 한 번만 서자가 나오면
그 이후 줄줄이 금고되어야 하는 말도 안되는 법 때문에
몰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처럼 조선후기사의 이해에서 노비와 서자를 빼 놓고는
전체 역사를 이해하기란 난망이다.
호학군주 정조를 찬양하면 무엇할 것이며
이기논쟁, 예송에 붕당정치 아무리 파도 무엇할 것인가?
이들 군주와 붕당정치의 주인공인 사족들은
거대한 노비와 서자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
실제 조선후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노비와 서자의 바다를 무시하고 그 바다에 떠 있는 좁쌀 같은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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