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중국 선우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선우씨는 있다.
이 두 선우씨 사이에는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 외에는 접점이 없을까?
만약 있다면 두 선우씨 사이의 접점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무엇일까?
필자가 알기로
한국과 중국에서 나오는 선우씨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삼국시대 기록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면.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建安中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 爲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 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 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 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其俗好衣幘 下戶詣郡朝謁 皆假衣幘 自服印綬衣幘 千有餘人. 部從事吳林 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八國 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忿 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 興兵伐之 遵戰死. 二郡遂滅韓.
이라 하였다.
여기에는 전-후한 교체기에 낙랑 지역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동한말-삼국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무쌍한 군현 변천사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 우선, 환령말, (동한 환제-영제 말) 한예가 강성하여 군현이 이를 통제 못해 군현의 백성이 많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하였다. 후한 환제(桓帝)는 재위 146∼167 이며 영제(靈帝)는 재위 168~189 이다.
2. 후한 헌제 시기인 建安 년간 (196年 - 220年)이 되자 요동에서 자립한 공손강이 대방군을 만들고 公孫模·張敞을 보내 한과 예를 정벌하였다고 하였다.
3. 삼국시대가 되자 위나라 명제 景初(237年四月-239年)연간에 태수 둘을 보내 이 지역을 재정벌하게 된다. 이 때 명제가 보낸 태수 둘 중 낙랑태수의 이름이 바로 鮮于嗣이다.
선우사는 越海定二郡이라 했으므로 원래 한반도에 살던 사람을 태수로 추봉한 것이 아니라 중국 쪽에서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들어온 사람임은 분명하다.
이때가 237-239년이므로 앞서 보았던 선우황비가 세워진 서기 165년 부터 보자면 약 두 세대 정도 지난 후의 인물이 되겠다.
선우황비는 그 일족이 "기자의 후예"라 했으므로 두 세대 정도 지난 시기의 선우사 역시 자신은 "기자의 후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우사의 족계는,
원래 중국에 있다가 조선으로 (기자)-- 다시 중국으로 (언제인지 모름)-- 경초 연간에 낙랑태수로 조선땅으로
라는 복잡한 경로를 밟았다는 것일까?
鮮于嗣는 자신의 조상들이 살던 조선-낙랑땅에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한편 그에 대해서는 한국쪽 선우씨 계보에는 그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혹시 한국쪽 선우씨는 鮮于嗣의 후예일까?
다음 편에서는 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주 ***
필자가 인용한 이 대목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 越海定二郡
은 논란이 구구하고 또 그 맥락에 따라 논리전개가 달라진다.
저 말은 액면 그대로는 경초 연간에 위나라 명제가 다른 통로 거치지 않고 대방태수랑 낙랑태수한테다가 몰래 직접 명령을 내려서는 바다를 건너 2개 군을 평정케 했다는 뜻이다.
텍스트 착란이 극심하지 않은가 하는 심증이 가는 구절이다.
이에서 말하는 두 개 군이 대방과 낙랑이라면 저들은 자기가 다스리는 군을 각각 쳤다는 희한한 결론이 나온다.
이 모순을 어찌 해명할까?
첫째 두 군이 낙랑 대방이 아닌 다른 군이라면 모든 의문이 명쾌히 풀린다.
이 경우 낙랑 대방은 골치 아프다. 위치가 지금의 평양 황해도 일대로 보면 건널 바다가 없다.
그래서 심지어 저 구절을 한반도 동해안으로 보고 그 일대 옥저니 읍루 혹은 낙랑 대방 변경을 친 걸로 보는 글도 내가 본 듯하다.
둘째 명제가 저들을 본국에서 각각 두 군 태수로 임명하면서 니들 지역이 어지러우니 즉각 바다로 가서 안정케 해라 는 식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후자는 비약을 전제로 해서 좀 불안하다.
선우사가 왜 하필 낙랑태수였을까?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5): 한국의 경우 (0) | 2023.01.21 |
---|---|
점제현신사비에 대한 의문 (0) | 2023.01.20 |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3): 《원화성찬元和姓纂》 (0) | 2023.01.19 |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2) (0) | 2023.01.18 |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1) (0) | 2023.01.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