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국내에 이상한 번역본 하나가 나왔으니, 도서출판 지식의날개가 선영아 번역으로 선보인 이 책은 제목이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며, 저자는 엘자 고다르라 한다. 이 신간을 우리 공장 출판 담당 이웅 차장이 그저께 '우린 왜 스마트폰 속 내 사진에 집착할까'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관심 있는 이는 저 파란 제목 클릭하면 원문 보기 들어간다.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상태라, 이에 대한 간평은 순전히 이웅 차장 소개 기사에 근거함을 미리 밝혀둔다. 이 신간 기사 첫 줄은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을 노출하기 즐기는 사람일수록 성관계를 맺는 횟수는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상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실제 삶에서 느끼는 기쁨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다"라는 것이니, 이게 무슨 소린가 확 구미가 당겼다.
저자 엘자 고다르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로, 이 책에서 디지털혁명이 현대인 정신세계에 가져온 변화와 그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으며, 그 일환으로 스마트폰 등에 의한 소위 '셀피(selfie)' 몰입 현상을 주목한다고 한다. 엘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유쾌한 놀이였던 셀피는 급기야 병적 증후까지 드러내니, 인간이라는 주체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자기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지금의 시대를 '셀피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언급들 보면, 셀피를 나르시시즘 강화라는 측면으로 보기도 하니, 사회병리현상 중 하나로 간주하는 듯하다.
이 책과 저자가 궁금해 구글 검색기를 돌려봤다. 엘자 고다르는 Elsa Godart라 1978년 프랑스 태생 여성으로, 주전공은 심리학자로 분류되는 듯하다. 생각보다 젊은 데 벌써 책이 무척이나 많은 걸 보니, 나름 촉망받는 신진 혹은 중진 연구자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뭐 프랑스 지성계야, 기라성 방불하는 소위 석학이 줄을 이으니, 고다르 역시 그런 부류 중 한 명인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번역된 책은 그의 저서 목록 중 《Je selfie donc je suis. Les métamorphoses du moi à l'ère du virtuel》(Albin Michel, 2016), 이거인 모양인데, 이로써 보면, 한국어 제목은 프랑스 원제를 직역했음을 알겠다.
고다르가 말하는 셀피가 소위 셀카다. 내가 저 책을 소화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말하는 바를 간평 혹은 반박할 처지에 있지는 아니하다. 다만, 이를 고리로 삼아 소위 셀카와 관련한 두어 가지 잡상(雜想)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고다르가 말하는 셀카 중독 현상을 단순히 어떤 사람이 자기 사진을 많이 올린다 해서, 그리 진단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인지 내 사진을 꽤 자주 올리는 편인데, 그렇다고 셀카 중독이랑은 전연 거리가 멀어, 이건 거의 예외없이, 소비용이라, 내가 이런 자리 왔다는 흔적으로만 이용할 뿐이다.
저 셀카 중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성립가능한데, 첫째가 포샵, 둘째가 본인 사진 외에는 사진을 찍지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나르시시즘과 동의어인 셀카 중독은 반드시 과도한 후보정을 요구하기 마련이거니와, 뭐 이래저래 색감 달리하거나 각종 조작을 통해 원본을 조작하는 것이니, 그리하여, 그 어떤 추물이라도 이 조작을 거친 자기 얼굴은 소피 마르쏘 빰치는 인물로 둔갑하곤 한다.
둘째, 전업적 사진작가, 혹은 그에 견줄 만한 사진 애호가 중에 더러 셀카를 애용하기도 하는데, 정작 이런 사람 중에 뭔가 책을 낸다거나, 혹은 자기 전시회를 연다 했을 때 막상 본인이 쓸 만한 본인 사진은 거의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사람은 결코 셀카 중독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내 경우가 실은 이에 해당하거니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포진하는 사진작가 혹은 그에 준하는 사진애호가들은 정작 자기가 쓸 만한 자기 사진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그런 사진을 구하지 못해 애면글면하곤 한다.
나 역시 더러 책을 낼 일이 있고, 더불어 이런저런 자리 불려갈 때 저짝에서 소위 프로필이라는 것들을 요구하곤 하지만, 그때마다 마뜩한 사진이 없이 애를 태우곤 했으니, 그리하여 어느 때부터인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내 사진 가끔 찍어달라 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그런 곤혹스런 경험에 처한 적 있는 다른 사진작가가 가끔 찍어주기도 하니, 그에서 내가 필요한 내 사진 몇 장을 건질 뿐이다.
이 얘기 나온 김에 인물 사진 촬영과 관련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쓸 만한 내 사진은 누군가가 저 멀리서 망원으로 내가 사진이 찍힌다 의식하지 않을 적에 찍힌 소위 몰카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사진을 찍힌다는 인식을 한 순간 피사체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표정이 어떨까 저 표정이 어떨까? 나는 정면 보다는 앞 모습이 예쁜데 하는 갖가지 만상이 요동을 치기 마련이라, 이 경우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실패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찍는 내가 마음에 들고, 찍히는 내가 마음에 드는 내 사진은 오직 몰카가 있을 뿐이다.
'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폰을 퇴역시키며 (0) | 2018.10.05 |
---|---|
홍시 모노가타리 (1) | 2018.10.02 |
풍납토성, 무령왕릉, 그리고 권오영 (6) | 2018.09.29 |
섬돌 앞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인데... (0) | 2018.09.26 |
고향 아침 (1) | 2018.09.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