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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가 자기 연구대상에 알게 모르게 애정을 갖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까?
물론 그것이 지나쳐 연구대상을 무조건 숭배한다거나 흠을 덮어둔다거나 하는 일은 경계해야겠지만, 연구자도 사람인 이상 대상을 알아갈수록 정을 쌓게 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말이다. 만약 나에게 그런 대상이 있는가 물으면, 고민하다가 "최근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습니다."라고 할 것 같다.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 1860-1934. <친일인명사전>을 토대로 생년을 1861년에서 1860년으로 수정한다).
아들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과 함께 당대엔 난초로 이름깨나 날렸지만, 최근까지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던 근대 서화가다(올해 이 사람을 다룬 논문을 써볼 생각이다. 발표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난초 작품을 보면 석파란, 정확히는 그 제자 김응원(金應元, 1855-1921)의 소호란小湖蘭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화격이나 유연성은 훨씬 떨어지고 뻣뻣한 느낌이 강해 보인다-고 최근까지는 여겼다.
왜 과거형이냐 하면, 근래 수연의 작품 하나를 보고 그 선입견에 금이 좀 갔기 때문이다.
살 얇은 일본식 부채에 작은 난초를 치고 화제를 붙인 소품이다.
정사년 원일元日에 그렸다했는데, 곧 1917년 설날이다. 100년이 넘었음에도 화면이 깨끗해서, 받았던 사람이 고이 보관만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게 두고만 있기 아까울 정도로 난초를 친 품이 아름답다.
예리한 필치의 춘란인데, 진하게 뽑아낸 이파리와 옅게 우린 꽃대, 그 중간쯤 되는 먹빛의 난꽃이 조화롭다.
이 정도면 소호나 석파 못지않은 솜씨다. 수연으로서는 예외적이라 할 만큼 멋진 작품인데, 아마 이 난을 칠 때 컨디션이 유달리 좋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난을 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쭉 나온 난이파리 위에 얹힌, 소호 글씨를 쏙 빼닮은 화제도 일품이다.
빈 골짜기에서 나온 그윽한 자태 幽姿空谷産
맑고 깨끗하니 평범한 꽃 아닌데 灑落不凡花
인간 세상에 잘못 나타나버려 誤出人間世
부잣집으로 뿌리가 옮겨졌다네 移根富貴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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